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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별로 안든다" 요양병원 막무가내 입원 수두룩
본인부담상한제따라 치료비 적어 가벼운 인지장애 환자도 장기입원"건보 재정만 축내… 제도 개선해야"
임진혁기자 liberal@sed.co.kr
위 기사와 관련 없습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서울 강남에 사는 상류층 A씨는 지난해 말 치매를 앓고 있는 80대 어머니를 집 근처 요양병원에 입원시켰다. 치료가 급하지는 않지만 집에서 간병하기 힘들고 사람도 없기 때문이다. 간병비를 제외한 한 달 치료비(보험급여 적용분)는 60만~70만원선으로 A씨에게도 적은 돈은 아니다. 그러나 진료비 본인부담상한제에 따라 1년간 최대 400만원만 내면 되기 때문에 입원기간이 7개월이나 1년이나 비용은 똑같은 상황. A씨는 어머니를 빨리 퇴원시킬 필요성을 못 느끼고 있다.
A씨처럼 치료가 급하지 않은 노인들이 요양병원에 장기간 입원하면서 건강보험 재정만 축내는 사례가 상당히 많다는 분석이 제기됐다.
4일 권순만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팀이 발표한 '실태조사를 통한 노인의료(요양) 서비스 제도 개선 방안 연구'에 따르면 요양병원에 입원한 환자의 55.2%는 가벼운 치매를 앓고 있거나 약간의 인지장애만 있어서 의료 서비스의 필요도가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가벼운 증세여서 통원치료를 하면 되는데도 굳이 장기간 입원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 같은 요양병원 장기입원은 당연히 건강보험 재정을 악화시킨다. 본인부담상한제에 따라 소득에 따라 개인의 치료비 부담이 연 200만~400만원으로 묶여 있다 보니 가정에서 돌보기 어려운 노인들을 연중 입원시킨다는 것이다. 지난해 본인부담상한제로 건보공단이 추가로 지급한 진료비는 모두 6,128억원에 달했고 그중 44.7%인 2,738억원이 요양병원으로 들어갔다. 이 가운데 91.5%는 180일 이상 장기입원환자에게 지급됐다. 특히 지급액의 30.5%가 소득 상위 20%에 속하는 최상류층을 돕는 데 사용된 것으로 나타났다.
권 교수는 "장기입원 기준이 마련돼야 하고 인지장애나 문제행동 등 의료 필요도가 낮은 환자들은 본인부담상한제에서 제외시키는 방안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문제는 노인 요양환자를 다룰 때 요양시설에 보내야 할지 혹은 요양병원에 입원시켜야 할지에 대해 법적인 기준이 마련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이 때문에 입원이 필요하지 않은 환자가 장기간 병원에 입원하기도 하고 반대로 뇌졸중 등으로 장기간 재활치료가 필요한 환자가 의사나 간호사가 없는 요양시설에서 방치되는 일도 발생하고 있다.
권 교수팀은 의료 필요도가 높은 환자들은 요양병원으로, 의료 필요도가 낮은 환자들은 요양시설로 보내기 위해 이용자 기준을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또 요양병원이 과잉공급되고 있고 많은 병원들이 의사와 간호사를 제대로 갖추지 못하고 있는 부분을 개선하기 위해 요양병원 인력 기준을 상향 조정하고 요양병원 적정성 평가와 인증제의 실효성을 강화해야 한다고 권 교수는 주장했다.
건보공단 관계자는 "노인 요양에 관한 연구용역 결과를 바탕으로 보건복지부와 함께 병원과 학계 등의 의견을 종합해 개선대책을 논의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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