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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현칼럼] IMF 개혁과 우리 경제외교

지난 8월 말 로드리고 라토(Rodrigo Rato) 국제통화기금(IMF) 총재는 오는 9월 중순 싱가포르에서 열리는 IMF 및 세계은행(World Bank) 정례회의에서 한국ㆍ중국ㆍ터키ㆍ멕시코 등 네 나라의 주식지분을 늘릴 것을 제안하겠다고 언급했다. 최근 세계경제에서 후진국 비중이 늘어난 것을 반영해 IMF의 의사결정구조를 바꾸는 개혁의 첫 단계라는 설명이었다. 국제무역기구(WTO)나 (안보리 상임이사국의 거부권이 있지만) 국제연합(UN)은 1국1표 원칙에 입각해 있는 데 반해 IMF나 세계은행은 기본적으로 주식회사와 같이 1주1표, 즉 1원1표 원리에 기초하고 있다. 따라서 주식지분이 늘어난다는 것은 투표권이 그만큼 늘어난다는 것이다. 1944년 IMF가 세워질 때 주식은 그 당시의 경제력을 바탕으로 분배됐다. 모든 회원국이 동일한 수의 ‘기본주식’을 받기는 했지만 이는 11.3%밖에 되지 않았고 나머지는 얼마나 출자를 했느냐에 따라 결정됐다. 세월이 흘러 계속 증자가 이뤄지면서 기본주식 비율은 2.1%로 줄어들었고 IMF는 사실상 1주1표의 원리하에 운영됐다. 또 IMF 설립 당시 압도적인 경제적 우위에 있었던 미국은 자신의 소유지분을 17.3%에 묶는 대신 중요사안 결정에 85%의 동의가 있어야 한다는 규정을 삽입함으로써 사실상 거부권을 가지게 됐다. 그러나 IMF가 수립된 후 60여년 사이에 세계 경제구도는 엄청나게 바뀌었다. ‘동아시아의 기적’을 통해 일본ㆍ한국ㆍ대만 등이 급부상했다. 이 기간 동안 세계경제에서 아시아의 비중은 두 배 이상 증가했고 이제는 덩치 큰 중국과 인도까지 고도성장을 구가하게 되면서 아시아 비중은 더욱 늘어날 전망이다. 남미도 최근 20여년은 (IMF 처방을 충실히 받아들인 결과) 저성장에 시달려 세계경제에서의 비중이 제자리걸음을 했지만 50년대에서 70년대 사이에 고도성장을 했기 때문에 1944년에 비하면 세계경제에서 비중이 커졌다. 세계경제의 세력균형이 이렇게 바뀌었지만 IMF의 의사결정 구조에는 큰 변화가 없었고, 절대다수의 주식을 갖고 있는 선진국들은 자신들에 유리한 방향으로 의사결정을 했다. 그러나 80년대 대다수 후진국들이 외채위기를 겪으면서 후진국 실정을 잘 생각하지 않고 급진적인 시장주의 개혁을 강요하는 IMF에 대한 불만이 커져갔고, 경제력의 변화를 반영해 IMF의 의사결정구조를 바꿔야 한다는 소리가 높아졌다. 자신들의 영향력이 줄어들 것을 걱정한 선진국들은 당연히 이를 반대했지만 IMF가 97년 아시아 금융위기를 통해 보여준 무능과 독선은 대부분 선진국들이 IMF 개혁이라는 명제를 받아들이도록 만들었다. 이번 라토 총재의 발언도 이러한 맥락에서 나온 것이다. 우리나라를 비롯해 선진국들에 ‘간택’된 4국은 즐거울지 모르지만 라토 총재의 제안은 다른 후진국들 사이에서 큰 반발을 일으키고 있다. 인도ㆍ브라질 등 투표권이 늘어야 할 위치에 있지만 외교적으로 선진국들, 특히 미국과 사이가 좋지 않은 이유로 이번 제안에서 제외된 나라들은 불만이 많다. 특히 인도는 라토 총재를 공개적으로 반박하고 나섰다. 아프리카 나라들은 IMF에 영향을 가장 많이 받는 것은 자기들일진대 자기들의 발언권을 강화해주지 않는 IMF 개혁은 무의미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IMF도 아프리카 나라들의 반발을 무시할 수만은 없다. 최근 국제자본시장 성장에 따라 중진국들이 점차 IMF를 필요로 하지 않게 되면서 IMF는 최빈국들, 특히 아프리카 국가들에 빌려준 돈에 대한 이자 수입으로 거의 전적으로 재정을 꾸려나가고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볼 때 지금 상황은 우리나라가 선진국들에 간택됐다고 좋아하고만 있을 때는 아니다. 세계경제에서 중요한 한 축이 된 나라로서, 그리고 선진국도 아니고 후진국도 아닌 중간자적 입장에 있는 나라로서 우리나라는 어떤 방향으로 IMF가 개혁돼야 선진국과 후진국의 이익을 공정하게 반영하는 국제기구가 될 수 있는가 하는 논의에 적극 참여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다른 후진국들의 이익도 공정하게 반영될 수 있는 장기적 개혁안이 나올 때까지 우리 주식의 증가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는 ‘대승적인’ 자세를 보이는 것은 어떨까. UN 사무총장까지 배출해보겠다고 나선 나라 입장에서 우리나라의 이익만을 생각하는 ‘소승적인’ 경제외교를 해서는 곤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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