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P 변호사로 일 시작했지만 전문성·보험상품 등에 매력 과감하게 새 분야 뛰어들어
낯선 아태지역본부 임원직도 적극적으로 일하고 싶어 선택
아이디어 자유롭게 교환하는 소통이 강한 회사로 만들 것
한국 사회의 활력이 예전에 비해 크게 떨어지고 있다는 진단이 많다. 기업은 비즈니스 환경을 이유로 투자보다 기존 사업을 매만지기에 급급하고 젊은이들은 그들대로 평탄한 일자리를 잡는 데 목을 매는 현상이 뚜렷한 탓이다. 그렇다 보니 새로운 것을 일구기보다는 한정된 시장에서 자기 자리를 찾는 제로섬 경쟁만 불을 뿜고 있다.
인생 경영이든 기업 경영이든 리스크가 커진 데 따른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볼 여지도 있지만 23일 서울 여의도 본사 집무실에서 만난 이명재(46ㆍ사진) 알리안츠생명 사장은 이런 흐름이 못내 안타깝다. 성장하기 위해서는 안주를 피하고 도전해야 한다고 보기 때문이다.
이 사장은 자신을 시험대에 올리는 삶을 지향했고 또 그렇게 살기 위해 노력했다고 한다. 미국 유학, 정보기술(IT) 회사에서 보험사로의 전업, 해외지역본부에서 임원 역할 수행 등은 그런 실례다. 이 사장은 "남들이 보기에 무모해 보이는 일을 성취하기 위해 도전하는 사람이 갈수록 적어지는 것 같다"며 "하지만 인생을 돌이켜볼 때 내 자신이 성장할 때는 스스로 자극을 받을 수 있도록 힘에 부치는 일을 맡고 낯선 환경에 처할 때였다"고 회고했다.
남이 깔아주는 레드카펫은 없다. 도전하라.
국내 대학(연세대)에서는 정치외교학을 전공했다. 학사와 석사를 모두 마치고 군대에 갔다. 포병대대에서 군생활을 했는데 깜깜한 밤에 보초를 서면서 미래에 대한 생각을 많이 했다고 한다. 어릴 때부터 기업에서 경영을 해보고 싶다는 막연한 생각을 가졌을 뿐 당시만 해도 구체적인 계획은 없었다
"'하고 싶은 게, 정말 도전하고 싶은 게 뭘까' 곰곰이 생각했죠. 그러다가 어릴 적 TV에서 보았던 '하버드의 공부벌레들'이라는 프로그램이 떠오르더라고요. 공부를 더 하고 싶었습니다. 군대에 있을 때 유학 가기로 마음을 먹은 셈이죠."
경영인에 대한 막연한 동경이 작용한 탓인지 뉴욕 시러큐스대에서 MBA를 했다. MBA를 마친 뒤에는 취업과 로스쿨을 두고 고민했다. 결국 3년을 로스쿨에서 보낸다. 그렇게 경영학과 법학을 공부한 경험은 그가 경영자로서 삶을 꾸리는 데 든든한 자양분이 되고 있다.
"유학 간 것을 두고 집이 부유했을 것이라고 지레짐작하시는 분이 많아요. 하지만 부친은 평범한 공무원이셨고 두 분 형님은 이미 취업해 있었습니다. 제가 부친께 '유학을 가고 싶다'고 말씀드렸더니 '형한테 지원해준 것 이상은 못해준다'고 하시더군요. 당연한 거죠. 유학 시절에는 주말에 아르바이트하면서 열심히 공부했습니다."
첫 직장인 컴퓨터업체 휴렛팩커드(HP)에서 변호사로 일했다. 그가 IT 회사를 택한 이유는 IT를 통해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4년간 일했는데 한계를 느꼈다고 한다. 이 사장은 "HP는 매트릭스 조직이라 노하우가 축적되고 매뉴얼이 잘 정리돼 있는 장점이 있지만 한번 변호사는 끝까지 변호사만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전체적인 커리어 관점에서 폭넓은 일을 하고 싶은 욕망이 생겼다"고 말했다. 그가 전업을 결심하게 된 이유다.
일을 적극적으로 해내라
보험업으로 전향한 것은 열심히 하면 전문가가 될 수 있으리라는 판단 때문이었다. IT 기업에서 법무를 맡으면서 느꼈던 벽 혹은 좌절감을 보험업에서는 극복할 수 있을 것으로 봤다. 특히 보험산업 자체가 고객이 어려울 때 도와줄 수 있는 상품을 판다는 점도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외국계 회사이지만 자율경영의 체계도 잘 잡혀 있는 것 같아 지난 2003년 알리안츠생명 한국법인 전무로 전격 합류했다. 경영지원실장 등을 거쳐 2007년 부사장에, 그리고 올 2월 사장에 취임했다.
승승장구한 비결을 물었다. 대답은 간단했다. "돌이켜보면 힘든 일이 맡겨졌을 때도 그 일을 피하지 않았어요. 일이 많으면 힘들기도 하지만 조직이 일을 맡길 때는 신뢰가 있으니까 맡기는 것입니다. 상황이 어려워도 다 받아서 해내려고 노력했습니다. 어려움 속에서도 좋은 성과를 내면 그게 바로 커리어가 된다고 생각합니다." 적극적으로 일하는 것, 그것 이외의 비결은 없었다는 얘기다.
한국법인에서 부사장 역할에 익숙해질 때인 2010년 싱가포르에 소재한 알리안츠그룹 아시아태평양지역본부에서 임원(마켓매니지먼트, 법무&준법담당)으로 일해달라는 제안이 왔다. 당시 11개 국가에 16개 계열사를 두루 관리하는 아태지역본부의 주요 포스트에서 한국인이 일한 사례는 없었다. 달리 말하면 그룹 내에서 한국인에 대한 인식 자체가 낮았다고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 사장은 그 제안을 받아들인다.
그는 "한국에서 생활이 편해질 때쯤 제안이 왔는데 도전을 통해 새로운 자극이 필요한 때였다"며 "싱가포르에 가서 힘든 점도 있었지만 그 선택이 옳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런 관점의 연장선에서 젊은이들에게도 "남들이 다 가는 길보다 더 도전적인 일을 찾아야 한다"고 조언했다.
소통강한 회사 만들겠다
이 사장은 아이디어가 많다는 말을 듣는다. 일상에서 떠오르는 이런저런 생각을 구체화해 실행해보는 것이 몸에 뱄다. 하지만 정작 이 사장 본인은 이런 평가에 손을 내저었다. 자신이 아이디어를 내는 것도 좋지만 기본적으로는 직원들의 의사표현이 많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유롭게 의사를 표출할 수 있는 분위기 조성에 신경 쓰고 있다.
"사람은 다 한계가 있어요. 저만해도 정치ㆍ경영ㆍ법학을 배웠습니다. 태어나고 자란 곳은 한국이지만 미국에서 5년을 살았고 독일은 50회가량 방문했고 싱가포르에서 3년간 살았어요. 다양한 경험을 했다고 볼 수 있죠. 그래도 부족함을 느낍니다. 일을 해보면 사장이 하나에서 백까지를 다 챙길 수 없어요. 특정 분야마다 실무자들이 사장보다 더 잘 압니다. 더 중요한 것은 조직원들이 아이디어를 편하게 얘기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드는 것이에요. 그러면서 저도 배우고 직원들이 내놓은 아이디어에 피드백을 빨리 해줍니다."
지역을 돌며 설계사와의 소통에도 각별한 관심을 쏟고 있다. 알리안츠생명에는 22개 지역단이 있는데 한 달에 두 군데를 방문한다고 했다. 1년이면 한 바퀴를 모두 돈다. 지방을 순회하면서 알리안츠 어드바이저(여성 설계사)와 프로페셔널 어드바이저(주로 남성 설계사)들과 상품ㆍ영업전략 등에 대해 허심탄회하게 의견을 나누는데 솔직하게 설명하면 다들 공감하고 이해해준다는 게 이 사장의 설명이다.
이 사장은 직원들과 설계사의 로열티가 강하다고 했다. 알리안츠생명이 국내에 진출한 것은 1999년 제일생명을 인수하면서부터인데 제일생명의 업력을 합치면 보험업을 50년가량 이어온 셈이다. 이 사장은 "50년 역사와 함께한 때문인지 끈끈함이 있다"며 "지방 방문을 가면 오히려 직원들에게 에너지를 받는다"고 말했다. 그는 "올해 말 차세대 전산시스템이 구축되면 현장에서 원하는 수준 이상으로 업무환경이 개선될 것"이라고 전했다.
마지막으로 그는 직장생활에서의 중요한 세 가지 키워드를 제시했다.
"가장 먼저 직원ㆍ동료ㆍ고객에게 신뢰(trust)와 존경(respect)을 받고 줄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 더 덧붙이면 인내(patience)를 말하고 싶어요. 요즘 직장인들은 다른 회사로 쉽게 옮기는 경향이 있습니다. 회사에서 동료와의 교류, 존중, 신뢰 같은 것들을 너무 쉽게 버립니다. 하지만 그런 것들을 새 회사에서 받기는 어렵습니다. 현재의 어려움은 스스로를 단련할 기회가 된다는 생각을 했으면 좋겠어요. 어려운 시기가 지나면 발전하게 됩니다. 인내를 갖고 노력하는 자세가 더 중요합니다."
● 이명재 사장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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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李사장의 연금상품 예찬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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