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정안의 핵심 이슈는 국민권익위원회가 2012년 입법 예고했던 원안대로 직무 관련성은 없지만 100만원 이상의 금품을 챙긴 공직자를 형사 처벌할 것이냐 여부다. 정부는 지난해 직무 관련성 없는 금품수수까지 형사 처벌하는 것은 과잉금지 원칙에 위배된다며 받은 돈의 최대 5배까지 과태료를 물리는 쪽으로 수정한 법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이후 여야는 각각 수정안·원안 처리를 주장하며 법안 심의조차 하지 않는 등 미온적으로 대처해왔다. 청탁이 '업(業)'이라는 얘기를 듣는 국회의원 입장에선 뜨거운 감자이기 때문이다. 정부 수정안은 직무와 관련해 받은 금품 등이 100만원 이하여도 형사 처벌할 수 있는 등 원안(과태료)보다 강화된 부분이 있다. 원안·수정안 모두 부담스러울 것이다.
국회의원들은 의정활동을 내세워 지역구나 자신이 소속된 국회 상임위원회와 관련된 기업·기관·지인·스폰서를 대신해 공직자에게 청탁·민원을 하는 경우가 많다. 이 중에는 공직자에게 법령을 위반하거나 지위·권한을 남용하도록 압력을 행사하는 부정청탁·알선 행위도 적지 않다. 법안은 국회의원 등이 공직자에게 부정청탁을 한 경우 다른 제3자보다 더 무거운 과태료를 물리도록 하고 있다. 그래서 부정청탁의 당사자이지만 막강한 입법권을 가진 국회가 꼼수를 부려 개악할지 모른다는 의구심이 여전하다. 앞서 여야는 2월 상설특검·특별감찰관제 설치 법안을 통과시키면서 특별감찰관의 감찰 대상에 판검사와 국회의원을 빼버렸다. 공직부패 척결을 위해서는 국회의원도 특별감찰 대상에 포함해야 한다는 게 국민의 뜻이었지만 삼권분립 원칙에 어긋난다는 논리를 동원했다.
하지만 공직자라면 누구도 예외를 두지 않는 제대로 된 김영란법 없이 우리 사회에 만연한 부패의 고리를 끊어낼 수 없다. 여야는 어떻게든 빠져나갈 구멍을 만들어놓으려는 유혹을 떨쳐내야 한다. 제대로 된 김영란법을 통과시키지 못한다면 세월호 피해자를 두 번 죽이는 것이나 다름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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