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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경이 만난 사람] 김주현 현대경제연구원 원장

"北세습과정 남북긴장 고조 우려…인도적 지원 채널 열어둬야"


●북한·정치외교
권력승계 명분 위해 北엉뚱한 일 벌일수도
대화통로 끊어 놓을때 얻을 이익 뭘까 생각을 ●거시경제
올 6% 성장 무난 할것… 내년까지 이어질진 의문
규제개혁등 통해 체질개선… 잠재성장률 5%대 올려야 ●국제금융·환율
환율 오버슈팅 구조적 문제 G20전까지 요동 칠것
中, 한국 보는 시각 변해 對中전략 다시 검토해야 ●부동산·공정사회
대·중기 상생 틀 마련… 단계적 추진이 바람직
규제정책으론 왜곡 못잡아 부동산시장 차별화 인정부터
"김정은의 등장을 계기로 북한은 당분간 권력승계를 최우선 순위로 삼을 것입니다. 승계과정에서 자칫 내부가 불안해질 경우 한반도 긴장이 고조될 수 있습니다. 지금으로서는 현실적인 문제에 발목이 잡혀 남북관계가 개선되기는 쉽지 않은 상황입니다." 서울 연지동 현대그룹 사옥에서 만난 김주현(사진) 현대경제연구원 원장은 급변하는 북한 문제에 대한 얘기부터 꺼냈다. 김 원장은 우리나라에서 손꼽히는 경제 분야 싱크탱크를 이끌고 있는 '본연의 자격'과 함께 국내 최대 규모의 민간 대북사업을 주도하고 있는 그룹의 아이디어 뱅크라는 특수성을 동시에 지니고 있다. 그만큼 그의 발언은 단순히 민간 연구소의 책임자라는 차원을 넘어 남북관계와 거시경제의 현상에 대한 그림을 그릴 수 있게 해줬다. 김 원장은 "김정은으로 권력이양이 이뤄지면서 혹시라도 승계작업에 명분을 주기 위해 엉뚱한 사건을 일으켜 한반도 긴장이 높아지지 않을까 우려된다"며 '포스트-김정일' 과도시대에 대한 전망을 내비치기도 했다. 그러면서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계속되고 있는 대북 강경책과 관련, "약을 처방했는데 당장 듣지 않는다고 쓰지 말자고 그러는 건 아닌 것 같다"며 "인도적 지원까지 닫아서 과연 우리가 얻을 이익이 얼마나 될지를 생각해 봐야 한다"고 분명한 입장을 밝혔다. 정부가 최근 중기재정계획에서 밝힌 매년 5%의 평균성장률 목표에 대해서는 "5% 경제성장을 달성하려면 결국 잠재성장률을 올리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며 규제개혁, 투자환경 개선 등 근본적인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런 노력 없이 성장률을 높이려고 하면 어디선가 거품이 발생할 수밖에 없고 이는 향후 우리 경제에 큰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게 그의 진단이다. <북한ㆍ정치외교> 김 원장은 "가능하면 민감한 군사 분야나 정치외교 쪽은 건드리지 않으려고 한다"고 조심스러워 했지만 북한 얘기가 나오자 지난 10년간 북한 경제를 연구해온 경제연구소 수장답게 차분하면서도 논리 정연하게 북한과 한반도 정세의 미래를 전망했다. 먼저 김정은의 등장으로 본격화된 북한의 권력승계에 대한 질문을 던졌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건강이 안 좋아지면서 계획보다 빨리 후계승계가 이뤄지는 것 같아요. 북한은 경제발전을 비롯한 그 어떤 것보다 체제안정이 최우선 순위이다 보니 전례 없는 북한의 빠른 움직임이 눈에 보이고 있습니다." 그는 이어서 던진 '북한 내부의 큰 변화가 불가피한 것 아니냐'라는 물음에는 '양면성'이란 단어로 우리에게 미치는 영향을 답했다. "우리에게는 양면적인 문제입니다. 승계가 안정적으로 이뤄지면 분단이 고착화되는 동시에 남북관계는 오히려 안정적일 수 있습니다. 승계작업 과정에서 내부가 불안해질 경우 북한은 승계를 공고히 하기 위해 엉뚱한 사건을 발생시킬 수 있습니다. 자칫 한반도 긴장이 고조될 여지가 있는 것이지요" 김 원장은 북한의 급변 모습과 함께 불안한 상황으로 진행되고 있는 동북아시아의 정세에 대한 질문에도 명쾌하게 답했다. "한반도를 둘러싼 국가들 간의 정치적ㆍ경제적 갈등이 갑자기 불거지고 있습니다. 요즘은 정치ㆍ외교 문제가 경제적으로 많이 종속돼 있기 때문에 갈등구조가 더욱 심화되고 있어요. 미국과 중국이 위안화 환율절상 문제를 두고 갈등이 지속되고 있고 일본과 중국 사이의 영토분쟁도 심상치 않습니다. 쿠릴열도를 두고 일본과 러시아 간 벌이는 영토싸움도 만만치 않습니다. 여기에 북한 문제까지 더해진 것이죠. 남북 문제를 풀려면 결국 4강이 잘 협조해야 하는데 서로 편을 갈라 대립하는 상황에서 남북문제는 장기화되는 쪽으로 갈 것 같습니다. 한미 동맹이 강화되는 건 좋은데 한미 합동 군사훈련을 핑계로 북한이 중국과 더욱 긴밀히 연결될 수 있습니다. 한미 동맹이 공고해질수록 북중 간 관계가 가까워지는 묘한 상황이 전개되는 것이지요." 그렇다면 남북 관계는 언제까지 얼어붙어 있을 것인가. 이번에는 조금은 우문 같지만 '남북관계가 좋아질 가능성은 없을까'라는 질문을 던져보았다. "사실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로도 서로간의 대치국면을 타개하려는 노력이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결론적으로는 갈등의 골이 계속 깊어졌지요. 북한은 경제보다 체제보호가 우선이다 보니 변화된 태도를 보이기 쉽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가 북한을 밀어붙이는 정책은 북한이 나름의 길을 가는 데 도와주는 게 될 수 있습니다. 결국 대치국면, 긴장강화 국면으로 갈 수밖에 없지요. 누군가 명분을 줘야 새로운 국면에 진입할 수 있는데 현재로서는 쉽지 않습니다. 북은 북대로, 미국도 미국대로 현 기조를 바꿀 생각이 없고 미국과 중국 간의 사이도 벌어지는 마당에 서로 간의 협조를 기대하기는 더욱 어렵지요. 현재로서는 이 상태가 꽤 오래갈 수밖에 없지 않나 싶습니다." 조금은 어두운 색채의 질문. 하지만 대안이 필요했다. 그래서 '우리 정부의 대북 강경기조는 계속 유지하는 것이 옳은 것인지'에 대한 질문을 이어 보았다. 이에 대한 그의 답변은 우선 미국 정부의 정책에 대한 답변으로 나왔다. 조금은 에두른 그의 답변이긴 하지만 우리 정부에 대한 시사점으로는 충분했다. "얼마전에 뉴욕타임스에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과 도널드 그레그 전 주한 미국대사의 칼럼이 실렸지요. 북한과 대화채널을 열어 현 강경기조를 바꿔야 한다는, 미국의 현 대북기조와는 상반된 얘기였어요. 미국은 한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 같지만 비주류의 목소리도 계속 살려두면서 늘 가능성을 열어둡니다. 조지 W 부시 전 미국 대통령의 대북정책이 초기와 후반기 완전히 달라졌듯이 버락 오바마 정부에서도 정책을 바꿀 수 있는 여지와 목소리를 남겨주는 것이지요." 그의 발언은 결국 우리 정부의 정책에 대한 아쉬움을 말하는 것이 아닐까. 그래서 이번에는 '우리의 현 기조는 아쉬운 부분이 많지 않느냐'라는 질문을 정면으로 해보았다. "그렇습니다. 미국과 달리 우리나라는 정치권에서도 언론에서도 현 기조와 어긋나는 목소리는 나오지 않고 있어요. 최근 다소 나아지긴 했지만 여전히 북한과의 대부분의 대화채널을 끊고 있습니다. 적어도 인도적 지원 채널은 살려두고 대화채널도 열어두는 게 맞지 않나 하는 생각입니다. 인도적 지원을 끊어서 얻을 이익이 얼마나 되겠습니까. 지난 40년간 대북정책을 이렇게도 저렇게도 바꿔봤지만 결과적으로 어느 하나 잘된 것 없지 않습니까. 남북관계를 어떻게 관리할 것인지 장기적인 전략을 짜고 약 하나 처방해서 말 안 들으면 바로 바꿔버리는 식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거시경제> 북한과 최근의 국제 정세에 대한 얘기에 이어 이번에는 최근의 경제 이슈에 대한 물음으로 이어 보았다. 먼저 성장률에 대한 질문을 던졌다. '정부가 예상한 (올해) 6% 성장률이 달성 가능할 것인지'에 대한 질문에 그의 답변은 비교적 낙관적이었다. "지난해 기저효과를 생각한다면 충분합니다. 수출이 지난해 대비 25%까지 증가했고 소비가 4.2%, 설비투자는 20% 가까이 상승했습니다. 미국과 유럽ㆍ일본 등 선진국들은 경기회복세가 둔화되고 있지만 중국 등 브릭스를 위시한 개발도상국들의 회복은 빠르게 진전되고 있어요." 하지만 내년 이후의 전망에 대해서는 신중함이 가득했다. "내년에도 올해의 기조가 이어질지에 대해서는 다소 회의적입니다. 수출이 올해보다 10% 정도 늘긴 하겠지만 설비투자 증가율은 한자릿수대로 떨어질 것으로 보입니다. 특히 소비의 경우 부동산시장이 침체된 가운데 자산효과를 기대하기 어렵고 고용사정도 좀처럼 나아지지 않은 만큼 내년에는 올해보다 오히려 줄어들 것입니다. 정부는 내년에도 5% 성장률 달성이 가능하다고 말하지만 그렇게까지는 안 될 것으로 생각합니다." 단기 성장과 함께 김 원장은 중장기적인 경제의 그림, 즉 우리 경제의 잠재적인 실력에 대해서도 깊은 관심을 보여줬다. 우선 정부가 최근 발표한 중기재정계획에 대한 질문으로 들어갔다. '정부는 향후 5년간 매년 5%의 성장이 가능하다고 전망했는데요'라는 질문에 그의 발언은 원론적이면서도 매우 중요한 시사점이 녹아 있었다. "정부 중기정책이라는 것은 결국 정부가 생각하는 목표치라고 볼 수 있습니다. 5% 성장률을 달성하면 좋긴 한데 문제는 우리 잠재성장률이 그 수준이 되냐 하는 것이죠. 정책목표에 맞게 잠재성장률을 5%대로 끌어올려야 경제가 인플레이션 없이 무난하게 굴러갑니다. 잠재성장률을 올리지 않고 성장률만 높이려고 하면 결국 가용자원을 과도하게 운용하게 되거나 인플레이션을 유발해 잠재와 실질 사이에 거품이 낄 수밖에 없습니다. " 그의 답변은 이어 잠재 성장률에 대한 해법으로 이어졌다. "잠재성장률을 높이는 것은 우리 경제의 체질을 바꾸는 노력입니다. 저출산을 타개할 정책을 마련하든지, 과감하게 외국인 노동자 이민정책을 쓰는 것이 대표적이겠지요. 투자환경을 개선해 자본투입을 늘리고 외국자본 유입을 쉽게 하면서 규제개혁, 교육제도 개선, 사회적 자본 향상 등 과제가 많습니다. 이런 것을 그대로 놔두고 성장률만 높이겠다고 하는 건 모순된 말입니다." <국제 금융ㆍ환율> 남북 문제와 거시경제에 대한 얘기는 자연스럽게 최근 국제사회의 화두인 환율전쟁으로 이어졌다. '환율 문제가 패권 다툼으로 번지는 모습'이라는 질문에 답변은 명쾌했다. "결국 위기 이후 회복세 속도가 다른 가운데 나라 간에 나 먼저 살자는 전쟁 아니겠습니까. 다만 우리나라 상황을 생각해볼 경우 우리 환율은 늘 적정 가격보다 오버슈팅될 수밖에 없는 구조에 놓인 게 문제입니다. 유럽 재정위기가 터졌는데 달러당 1,500원까지 가고 최근에는 1,100원선을 위협받는 것을 어떻게 이해하겠습니까. 외환시장 자체가 작기도 하지만 우리나라의 정치ㆍ경제적 특수성 때문에 그 관계를 아는 자금들이 들락날락거리면서 오버슈팅을 만들고 있습니다. 이 자금들은 우리나라가 외환시장을 강력하게 방어하지 못한다는 걸 너무도 잘 압니다. 아마 환율 문제가 거론될 주요20개국(G20) 정상회의 전까지는 우리 외환시장은 굉장히 요동칠 것으로 예상됩니다." 환율 전쟁과 함께 국제적으로 문제가 되고 있는 이른바 '차이나 파워'에 대한 질문도 던져 보았다. "경제적인 부분부터 살펴봅시다. 그들이 우리를 보는 눈이 바뀌고 있습니다. 10년 전만 해도 우리 기업들이 중국에 공장을 지으면 중국은 기술을 전수 받을 생각에 여러 혜택들을 줬지요. 그러나 이제는 반도체나 조선ㆍ자동차의 최첨단 기술 정도를 제외한 범용기술에 대해서는 거들떠도 보지 않습니다. 비교하자면 미국이 캐나다나 멕시코를 보는 눈으로 중국의 시선이 변해간다고 할 수 있습니다. 결국 우리로서는 중국을 어떻게 활용하냐의 문제가 앞으로의 가장 큰 과제입니다. 외교적으로 어떤 목소리를 내면서 경제적으로는 어떻게 이익을 만들 것인지의 문제이지요. 중국에서는 한국에 대해 '언제까지 외교는 미국과 하고 장사는 중국과 할 거냐'고 비꼽니다. 미국의 동북아 이해관계가 과연 한국의 대북ㆍ대중 이해관계와 100% 일치하는지도 생각해볼 여지가 있습니다. 대중국전략을 다시 검토할 때가 아닌가 싶습니다. " <부동산ㆍ공정 사회> 이번에는 최근의 현안인 정부의 공정 정책과 부동산 문제에 대한 질문으로 들어가 보았다. 먼저 최근 화두로 떠오르고 있는 대ㆍ중소기업 상생에 대한 질문. 그는 어찌보면 당연하면서도 정부가 기본을 생각해야 한다는 것을 담은 발언을 꺼냈다. "대통령은 대기업을 상생에 강제로 동원할 경우 효과가 오래 못 간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압니다. 일부에서 주장했던 납품단가연동제가 결국 도입되지 않은 것은 대통령의 그런 의지에서 나온 것입니다. 과거에도 늘 상생의 노력은 있었지만 최근의 상황은 근본적으로 상생의 틀을 만들자고 노력한다는 측면에서 과거와는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기득권자가 존재하는 상황에서, 또 시장원리를 해치지 않으면서 약자를 보호한다는 게 말처럼 쉽진 않습니다. 다만 최근 정부가 하는 대로 조금씩 해 나가는 게 맞지 않나 하는 생각입니다." 부동산에 대한 얘기에서는 걱정스러움 속에서도 냉철함이 묻어 났다. '거래가 끊긴 와중에 전셋값은 폭등하고 있다'는 심각한 시장 상황을 먼저 얘기했다. "미국의 케이스실러지수를 보면 2006년 7월을 정점으로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를 겪으면서 최고 32%까지 떨어졌고 최근에는 고점 대비 28~29% 내렸습니다. 우리나라 KB부동산지수를 보면 정점 대비 1~2%밖에 안 떨어졌습니다. 이것은 통계문제가 아니라 그만큼 우리나라의 집값이 별로 떨어지지 않은 걸 보여줍니다. 매수매도 호가가 벌어지면서 거래는 중지되고 실수요는 전세로 몰려서 전셋값만 오르는 게 지금의 상황이지요." 그러면서 정공법의 대응을 주문했다. "정부가 특정 정책으로 왜곡된 현 상황을 바로잡기는 어렵습니다. 다만 부동산 시장은 차별화될 수밖에 없다는 걸 인정하는 데서 정책이 시작돼야 합니다. 강남처럼 주거환경이 좋은 곳이 많이 오르고 지방 과수요 지역은 정체되거나 내려가는 걸 인정해야지요. 그렇지 않고 지금처럼 강남3구에 금융규제를 가하는 식은 시장논리와 맞지 않습니다." 약력 ▦1952년 울산 ▦1980년 서강대 영문과 졸업 ▦1989년 애리조나주립대 경영학박사 ▦고려종합경제연구소 선임연구위원 ▦OECD정책자문기구(BIAC) 한국위원 ▦대한상공회의소 자문위원 ▦2000년 현대경제연구원 경영전략본부장 ▦2001년 현대경제연구원 부원장 ▦2004년~ 현대경제연구원 원장
“덩치 큰쪽이 인수해야 한다는 논리는 맞지 않아”
■金원장이 보는 현대건설 M&A 김주현 현대경제연구원 원장과 지난 1일 오전 인터뷰하던 도중 현대그룹이 현대건설 인수를 위한 인수의향서(LOI)를 접수했다는 뉴스가 들려왔다. 전략적 투자가로 독일의 하이테크 전문 엔지니어링기업 M+W그룹을 끌어들였다는 소식도 따라왔다. 현대그룹은 이미 추석 때부터 고 정주영 명예회장과 고 정몽헌 회장이 함께 일하는 현장사진이 실린 감성적인 광고를 내보내며 여론몰이에 한창이다. 현대경제연구원은 그런 현대그룹의 자타가 공인하는 싱크탱크. 그에게 현대그룹 인수에 대해 물어보지 않을 수 없었다. 인수전의 상대가 다름 아닌 형제가인 현대자동차그룹이기에 세간의 관심은 한층 증폭되고 있다. "글쎄요. 그룹에서 추진하는 일이기는 한데 연구소가 사실 딱히 도울 건 없습니다." 연구소로서는 자금을 동원할 수 있는 것도, 세를 과시할 수 있는 것도 아닌 만큼 김 원장의 말이 틀린 것은 아니다. 인수합병(M&A) 전략을 짜는 데 조언을 하는 정도의 도움을 주고 있다. 재차 물어보자 김 원장은 "도울 건 많지 않더라도 100% 중립을 지킬 수는 없지 않겠냐"는 말로 조용히 속내를 드러냈다. 조심스러웠지만 논리는 분명했다. "일부에서는 현대자동차그룹이 덩치가 크니까 현대건설을 가져갈 것이라고 전망하는데 그게 (논리적으로) 맞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런 논리라면 제널럴모터스(GM)가 벡텔을 인수하고 도요타자동차가 가시마건설을 가져갈 수 있다는 것인데 그들 나라에서 그런 M&A를 용인할지 생각해보세요." 김 원장은 "현대그룹은 지난 수년간 현대건설 인수를 검토해 충분한 준비를 해왔고 인수시 그룹 사업의 시너지 효과도 기대할 수 있을 거라고 자신한다"며 "당장 현대차그룹의 경우 현대엠코와 사업이 겹치는 문제부터 풀어야 하지 않느냐"고 밝혔다. 차분하게 말을 이어가던 그는 "굳이 가족문제, 구원의 문제까지 끄집어내며 M&A에 임할 게 있겠느냐"며 "경제적 논리로 조용하게 딜이 이뤄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언뜻 듣기에는 현대차그룹의 논리이기도 하다. 그러나 달리 생각하면 굳이 여론에 기대지 않더라도 인수전에서 이길 수 있다는, 그만큼 자신이 있다는 뜻으로도 해석되는 대목이다. 독일 M+W그룹과 전략적 투자가 관계를 맺으면서 현대그룹의 아킬레스건으로 꼽혔던 인수자금 마련에도 청신호가 켜진 것도 자신감을 붙이는 데 한몫했다.
北행보 모든 가능성 검토하며 대북사업 재개 대비
■더 바빠진 현대경제硏 최근 북한이 김정은을 대외적으로 공개하는 등 발빠른 행보를 보이면서 국내 최대 규모의 민간 통일연구센터를 운영하고 있는 현대경제연구원도 한층 바빠졌다. 겉으로는 별다른 보고서를 내놓지 않고 조용한 모습이지만 내부적으로는 북한 권력승계가 향후 남북관계, 대북 경협사업에 미칠 가능성 등을 면밀하게 검토하며 개성공단 사업과 금강산ㆍ개성관광 사업의 미래를 차근차근 따지고 있다. 김주현 원장은 "북한과 직접 사업을 하는 파트너의 입장인데 자꾸 정치외교 쪽으로 빨려 들어가면 우리가 사업을 꾸려가기 굉장히 힘들어진다"며 조심스러운 속내를 내비쳤다. 어떻게든 대북 경협ㆍ관광사업을 재개해야 할 현대그룹으로서는 북한 정치체제에 대한 가감없는 비판을 하기가 쉽지 않다. 때문에 연구소는 내부적으로 북한의 향후 행보에 대한 모든 가능성을 검토한 뒤 북한의 행보가 윤곽이 잡히고 우리 대북기조가 일정 수준 완화된다는 전제하에 대북사업에 박차를 가할 계획이다. 남북경협의 상징인 개성공단에 대해 묻자 김 원장은 "현 정부 들어 많이 퇴색되긴 했지만 개성공단을 설립한 취지와 정신은 지금도 유효하다"고 말했다. 당초 개성공단 청사진대로라면 총 20만명의 북한 근로자를 고용했을 것이고 이는 북한 내 80만가구가 남한과 직접적인 경제적 관계를 맺게 되는 것인데 어떤 식으로든 남북관계에 긍정적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는 논리다. 인터뷰를 마치고 나오던 길, 현대그룹 사옥 1층 로비에는 현대아산의 관광상담소가 자리하고 있었다. 금강산관광ㆍ개성관광을 접수받는 데스크는 찾는 이 하나 없이 썰렁했지만 옷매무새를 가다듬은 여직원 두 명은 북을 찾을 관광객이 오면 언제라도 벌떡 일어나 상담을 할 기세였다. 권력승계를 선언하며 판도라의 상자를 연 북, 녹았다 얼어붙었다를 반복하며 갈피를 잡지 못하는 남북관계를 초조히 따져가며 현대는 대북사업이 재개될 날을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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