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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블 클릭] 아시아 지역통화


세계대공황이 한창이던 1930년대 중반, 오스트리아의 한 마을에서 '늙는 돈(aging money)'을 통용시켰다. 시간이 흐르면 부패하거나 성능이 떨어지는 음식이나 기계처럼 발행 후 일정시간이 지나면 가치가 떨어지는 돈을 돌렸더니 놀라운 효과가 일어났다. 화폐유통속도가 빨라져 지역경제도 급속하게 살아났다. 돈에서 저장기능을 빼고 교환기능만 남긴 오스트리아 지역화폐의 성공은 오래가지 않았다. 기존 금융권의 반발 탓이다.

△노화하는 돈의 아이디어를 낸 주인공은 20세기 초반에 활동한 실비오 게젤(Silvio Gegell). 남미와 유럽을 오가며 사업과 연구를 병행한 그는 당대에 이름을 떨치지 못했으나 존 메이너드 케인스만큼은 명저 '고용ㆍ이자 및 화폐의 일반이론'에 이렇게 썼다. '마르크스보다 게젤로부터 더 많은 것을 배울 시대가 올 것이다.' 케인즈의 예언처럼 게젤의 노화하는 통화 모델은 미국에도 상륙해 한때 300여개 마을에서 통화로 쓰였다. 효과도 뛰어났으나 오래 못 갔다. 연방의 제재 때문이다.

△파운드화가 맹위를 떨치던 19세기 후반, 유럽에서 두 개의 통화동맹이 선보였다. 라틴통화동맹과 스칸디나비아통화동맹이 연이어 나왔으나 둘 다 실패로 귀착하고 말았다. 파운드의 위력 앞에 회원국 간 공조가 유지되기 어려웠다. 2차 대전 이후 아시아ㆍ아프리카에서 나타난 약 60여개의 통화동맹도 마찬가지로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단일 유럽의 기치 아래 출범한 유로화조차도 아직까지 완전한 통화동맹에는 이르지 못했다는 평가다.



△금융연구원에서 미국발 금융쓰나미에 대응하기 위해 아시아 지역통화를 구축하자는 보고서가 나왔다. 역사적으로 성공한 통화동맹이 거의 없고 새로운 시도는 압살 당하는 국제금융 풍토를 감안하면 현실성이 떨어지는 소리로 들린다. 그런데 보고서가 외환위기 가능성을 가장 먼저 알렸던 최공필 자문위원의 노작이다. 더욱이 우선은 투자은행들이 나서 이머징마켓 인덱스를 만들고 각국의 채권을 인수하는 정도가 출발점이라니 솔깃하다. 한미일 3국 학자들끼리는 공감대도 형성돼 있다니 작은 부문부터 실천해봄직하다. 태평양 건너 빅브러더의 심기를 건드릴지는 모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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