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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블 클릭] 동전의 퇴장


화폐에는 권력자들의 정치경제적 이해관계가 녹아 있다. 특히 전쟁은 '불량 주화'를 찍어내 주조차익을 남기거나 새 화폐를 고안하게 한 핵심적 요인이었다. 기원전 5세기 도시국가 아테네는 스파르타와의 전쟁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기존의 은화 외에 동화ㆍ금화를 주조했다. 금화ㆍ은화가 대세이던 17세기 스웨덴과 영국이 정부보증 지폐를 처음 발행한 것도 신ㆍ구교 간 종교전쟁, 프랑스와의 전쟁으로 재정이 바닥났기 때문이다.

△왕과 권력자들은 금ㆍ은의 순도를 낮추거나 무게를 줄인 불량 주화를 만들어 사욕을 챙기고 거덜난 재정을 충당하곤 했다. 정복전쟁이 끝나 금ㆍ은 유입이 줄었는데도 지출을 줄이지 않은 로마제국 황제들도 마찬가지다. 네로는 도금한 은화까지 찍어냈다. 제국이 무너질 무렵의 은화에 들어간 은 함량은 200여년 전의 4%로 쪼그라들었다. 16세기에 '악화(惡貨)가 양화(良貨)를 내쫓는다'는 말을 남긴 영국 엘리자베스 1세의 재정고문 토마스 그레셤도 불량 주화를 발행해 왕실의 부채를 줄이라고 부추겼다.

△둥근 형태의 금은 주화를 세계 최초로 만든 건 기원전 7세기 활발한 교역활동을 하던 리디아(터키 중서부). 이 주화(사진)에는 왕의 상징인 사자 얼굴이 등장한다. 왕의 권위, 화폐의 신뢰도를 높이기 위해서다. 상징물이 있던 자리는 이후 알렉산더 대왕 등 권력자의 차지가 됐다. 생전(生前)에 얼굴을 내밀었다가 암살된 권력자도 있다. 로마 공화정 최고 관직인 집정관을 거쳐 1인 지배자가 된 율리우스 카이사르는 공화정 옹호파에 의해 '황제를 탐내는 자'로 찍혀 피살됐다. 하지만 그의 양자이자 후계자로 훗날 아우구스투스 황제에 오른 옥타비아누스에 의해 화폐의 얼굴로 재등장했다.



△요즘 화폐는 금화 등과 달리 실질가치보다 액면금액이 중시된다. 지속적인 물가상승과 신용카드ㆍ휴대폰 등 사용 증가에 따라 동전 수요가 감소 일로다. 1원ㆍ5원짜리는 2005년부터 주화세트용으로 발행될 뿐이고 10원ㆍ50원짜리도 찬밥 신세다. 화폐 액면 금액을 낮추는 리디노미네이션(redenomination)이 전제되지 않는 한 동전의 신규 주조도 없을 것 같다. 구릿빛 동전이 추억 속으로 사라져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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