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철의 모내기 풍경은 중년 이상의 세대에게는 고향을 떠올리게 하는 아련한 추억이다. 여러명이 모여 못줄을 앞에 두고 줄을 지어 모를 심는 모습은 그 자체로 한 폭의 풍속화라고 할 수 있다. 고된 모내기 작업 중간에 논둑에 둘러앉아 함께 먹던 꿀맛 같던 들밥 또는 새참도 잊을 수 없다. 근처를 지나가는 누구라도 불러 함께 새참을 나누는 장면에서는 농촌의 푸근한 인심이 그대로 전달되게 했다. 일손이 부족해지고 기계화가 진행되면서 이제는 쉽게 볼 수 없는 풍경이 됐다. 이앙기가 홀로 논을 왕복하면서 자동으로 모를 심는 광경을 보면 외로움과 쓸쓸함이 느껴지기도 한다.
모내기, 즉 이앙법은 고려 말부터 우리나라에 소개됐다고 한다. 이앙법은 생산력을 획기적으로 늘릴 수 있는 농법으로 논밭에 바로 볍씨를 뿌리는 직파법과 달리 줄을 맞춰 모를 심으면 잡초 발생을 줄일 수 있고 옮겨심기를 통해 땅의 지력을 향상시킬 수 있었기 때문이다. 가을 추수 이후에는 보리를 심을 수 있는 장점도 있었다. 하지만 농업국가였던 조선은 이앙법의 효용을 알고 있었지만 거의 조선 왕조 내내 이를 금지하고 직파법을 고수했다. 17세기 이후에야 생산력과 인구가 줄어들자 농민들이 자발적으로 이앙법을 농사에 도입했다.
이앙법 보급을 반대하고 나선 양반과 사대부들의 주장 중 하나는 가뭄이 들면 물이 없어 한 해 농사를 망칠 수 있다는 점이었다. 직파법은 그래도 기본은 한다는 것이 그들의 생각이었다. 또 다른 이유는 이앙법이 생산력을 향상시키면서도 노동력은 덜 필요해져 양민이 줄어들게 되고 국가의 세수가 줄어들 우려가 있다는 것이었다. 당시 양반과 사대부들은 세금을 내지 않았다. 우리와 달리 이앙법을 일찍부터 도입한 중국과 일본은 생산력 향상으로 인구가 크게 증가하고 경제가 성장하는 성과를 거둘 수 있었다. 역사에 가정은 금물이라고 하지만 아쉬움이 남는 대목이다.
'모내기를 했는데 비가 안 오면 어쩔 것인가'라는 부정적인 생각과 '직파법은 그래도 기본은 한다'는 당시 일부 위정자들의 무사안일의 자세는 규제개혁 내지는 철폐가 화두인 요즈음 정부가 반면교사로 삼아야 할 필요가 있다. 규제 철폐에는 공직자들의 강력한 실천의지와 적극적인 자세가 가장 중요하다. 또 가급적 가능한 방향으로 규정을 해석하고 안 된다는 규정에 대해서는 의문을 품고 개선해나가는 노력이 필요하다. 규제의 영향을 직접 받는 국민의 입장을 경청하는 것도 중요하다. 미래창조과학부가 국민의 관점에서 규제개선 과제를 발굴·개선하기 위해 다음달 초까지 '국민 규제개선 모니터링단'을 공개 모집해 운영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이스라엘의 후츠파(chutzpah)정신이 창조경제의 동력으로 주목을 받고 있다. 후츠파는 담대함과 도전정신을 의미한다. 우리가 이스라엘로부터 벤치마킹할 필요가 있는 정신 중에는 후츠파 말고도 로시가돌(roshgadol)이란 것도 있다. 로시가돌은 '자기가 지시받은 일만 마지못해 한다'는 의미인 로시카탄(작은 머리)의 반대말이다. 단어의 뜻은 '큰 머리' 정도로 해석되지만 이스라엘에서는 "책임감을 가지고 맡은 일 이상을 적극적으로 해내는 것"을 의미한다. 이 로시가돌 정신이 창조경제 구현과 국민행복을 위해 규제와의 전쟁에 앞장서야 할 공직자의 덕목이 아닐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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