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발 재정위기의 여파로 이번주 발표된 글로벌 기업들의 실적이 크게 악화된 것으로 드러났다. 주요 소비시장인 유럽에서 재정위기로 정부가 지출을 줄이자 소비자들이 씀씀이를 아끼고 있기 때문이다. 아직까지 이렇다 할 탈출구가 보이지 않아 앞으로가 더 문제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27일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유럽 위기가 전세계로 번지면서 미국에서도 포드와 애플을 비롯해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500에 상장된 기업 상당수가 실적악화로 신음하고 있다.
특히 포드의 경우 2ㆍ4분기 유럽에서 4억400만달러의 손실을 본 여파로 매출이 전년동기 대비 57%나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고 애플의 실적도 시장 예상치를 크게 밑돌았다. 로이터 자료에 따르면 미국 S&P500기업 중 절반이 넘는 260여개 기업들의 2ㆍ4분기 실적이 목표에 미달했다.
유럽 기업의 상황은 더 암울했다. PSA푸조시트로엥은 지난해 상반기 8억600만유로의 순익을 기록했으나 올해는 8억1,900만유로의 순손실을 기록, 실적이 수직 추락했다. 에릭슨의 2ㆍ4분기 순익도 전년동기 대비 64%나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고 2ㆍ4분기 순익이 지난해보다 14%나 축소된 스웨덴 통신업체 텔레포니카의 경우 올해 말까지 배당금 지급을 중단하기로 했다.
글로벌 기업들의 실적이 이렇게 죽을 쑤는 것은 유럽 각국을 덮친 재정위기로 소비자들이 지갑을 닫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미국의 경우 수출의 20%를 유럽에 의존하고 있고 S&P500기업의 순익 가운데 17%가 유럽에서 나오고 있다. 미국경제의 큰 축을 담당하는 유럽이 흔들리니 미국 기업 또한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는 것이다.
이에 따라 전문가들이 분석한 미국 기업의 올해 순익증가율도 잇달아 하향되고 있다. 로이터에 따르면 지난해 10월 전문가들은 S&P500기업의 올해 순익이 지난해보다 13% 상승할 것으로 기대했으나 수치가 갈수록 낮아져 24일에는 5% 상승에 그칠 것이라고 분석했다.
문제는 이 같은 부진이 내년까지도 이어질 것이란 점이다. 대다수 전문가들은 '유럽의 정부지출 감소→실업률 증가→가계지출 감소→기업매출 급감→세수감소→정부지출 감소'의 악순환을 우려하고 있다. BNP파리바의 도미니크 바베트 이코노미스트는 "우리는 이미 악순환의 고리에 걸려들었다"면서 "정부ㆍ가계ㆍ기업 모두 두려움에 떨고 있다"고 말했다.
김득갑 삼성경제연구소 연구위원은 "유럽 재정위기가 미국을 비롯한 전세계 실물경제 위기로 전이되고 있다"면서 "중앙정부가 유동성 공급 등의 방식으로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야 하지만 단기간에 실마리가 풀리지는 않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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