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 의과대학 인류학·고병리연구실 신동훈 교수팀은 "경복궁 담장, 광화문 광장의 세종대왕 동상 아래, 시청사 부근, 종묘 광장 등 서울 사대문 주요 지점의 조선시대 지층에서 각종 기생충알이 발견됐다"고 10일 밝혔다.
조선왕조실록 등 고문헌에 한양의 오염상태가 기록되긴 했지만 흙에서 추출한 기생충알로 이를 실증적으로 밝혀내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연구팀은 지층에서 간흡충(간디스토마), 회충, 편충, 광절열두조충의 알을 발견했다. 이들 기생충은 포유류나 어류 등 동물을 숙주로 삼아 인체로 침투한 후 장기에서 기생하다 변을 통해 다시 밖으로 나온다.
실제 경복궁 앞에서 추출한 흙에서는 1g당 최고 165개의 알이 나왔고, 나머지 샘플에서도 평균 35개의 알이 발견됐다.
신 교수는 "당시 인분에 의한 흙의 오염도가 상당히 심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결과"라며 "요즘 흙에서 기생충알이 이렇게 많이 나오는 지역은 위생시설이 열악한 개발도상국의 대도시"라고 설명했다.
분석 결과 지층이 형성된 시대는 15-18세기로 나타났다.
신 교수는 "조선이 한양으로 수도를 옮긴 14세기 이후 이곳 인구는 폭발적으로 증가했다"며 "수많은 사람이 배출한 분뇨를 감당할 위생시설이 없어 도시가 이토록 오염된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실제 태조가 집권 3년(1394년) 조선의 수도를 개경에서 한양으로 옮긴 후 10만여 명에 불과했던 이곳 인구는 갑절로 뛰었다. 산업혁명이 한창인 18세기 후반 영국에서 인구 5만을 넘긴 도시는 런던 등 네 곳에 불과했다는 점을 고려하면 20만이 모여든 당시 한양은 가히 '메가시티'였던 셈이다. 문제는 한양에는 수많은 사람이 배출한 분뇨를 감당할 제대로 된 하수처리시설이 없었다는 점이었다.
한편 연구팀은 지난 2009년부터 국립문화재연구소 등의 지원으로 기생충학을 접목한 고고학 연구를 진행했다. 이전 연구에서는 조선시대 미라 18구에서 나온 기생충알을 분석해 이 시대 사람들의 기생충 감염률이 지금의 10배에 이른다는 사실을 밝히기도 했다.
/조상인기자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