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창시설 몇 번 읽었을 뿐인데 오랜 시간이 지나도 잊혀지지 않는 시가 있을 수 있다. 필자에게는 미국의 국민시인이라고 할 수 있는 로버트 프로스트의 '가지 않은 길'이라는 시가 그렇다. 전문을 모두 기억해낼 수는 없지만 시의 마지막 구절은 아직까지도 생생하게 외울 수 있다. (전략) 숲 속에 두 갈래 길이 있었다고/ 나는 사람이 적게 간 길을 택하였다고/ 그리고 그것 때문에 모든 것이 달라졌다고. 물론 어떻게 달라졌는지에 대한 설명은 없다. 아쉬움과 회한 등 깊은 여운만 뒤에 여백으로 남기고 있다.
시는 읽는 사람마다 각각 다르게 읽히는 법이다. 시대에 따라 받아들이는 의미도 달라진다. 젊었을 때는 두 갈래 길 중 가지 않은 길, 두고온 길에 대한 아쉬움을 느끼며 읽었고 읽을 때마다 감상에 젖곤 했다. 30여년이 지난 지금은 이 시를 보면 우리 경제가 떠오른다. 국민소득 2만달러 장벽에 벌써 8년째 묶여 있는 우리 경제의 현실을 생각하면서 우리가 지나온 길, 앞으로 가야 할 길을 생각해본다. 나이가 들면서 감정이 메말라졌다고 할 수도 있지만 정책담당자로서 그만큼 절박함을 느낄 수밖에 없는 탓이다.
불행한 역사로 인해 남들과 다른 출발선에서 시작한 우리 경제는 지금까지 남들이 깔아놓은 길을 빨리 달리는 방식을 취했다. 한국인 특유의 빨리빨리 문화로 수십년 동안 성공적으로 여기까지 달려온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그 도로는 이제 교통체증에 시달리는 길 수준을 넘어 끊어진 도로가 돼버렸다. 이제는 두 갈래 길이라는 선택의 여지도 없다. 숨겨져 있는 새로운 길을 찾아내거나 길과 다리를 만들면서 나가야 한다. 대한민국이 다시 한번 도약을 하기 위해 새롭게 찾거나 만들어가야 할 그 길을 '창조경제'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묻곤 한다. 창조경제로 향하는 길이 어디 있느냐고. 이렇게 대답하고 싶다. 창조경제로 가는 길은 없다고. 창조경제가 바로 길이고 그 끝에는 선진국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부강한 나라, 국민이 행복한 삶이 기다리고 있다고. 규제를 내려놓고 가벼운 마음으로 함께 걸어가는 길, 부처 간이나 민과 관을 가르는 차단막이 사라져 정보와 소통의 시야가 시원하게 확보된 길, 길가에 창의적인 아이디어와 영감이란 꽃이 피어 있는 길이 바로 창조경제란 이름의 길이다. 이 길에서는 무한상상이 가능하고 속도제한이나 차선 규제 등 걸림돌이 없어야 한다.
미래창조과학부는 올해를 창조경제 확산과 성과창출의 원년으로 삼아 정책역량을 집중할 계획이다. 지난해에는 정부의 주도로 창조경제라는 이름의 도로를 새롭게 만들고 닦는 데 중점을 뒀다면 올해는 그 길에 민간기업과 지역의 자동차들이 힘껏 달릴 수 있도록 지원할 예정이다. 최근 대통령이 "금 테두리를 둘러 멋있게 만든 달력이라도 새해가 되면 그 달력은 필요가 없다"면서 '헌 달력 무용론'을 피력했듯이, 융합과 창의성을 통해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기 위한 창조경제의 정책도 변화하는 환경에 맞게 늘 혁신할 때 비로소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을 수 있을 것이다.
인디언 아라파호족은 3월을 '한결 같은 것은 아무것도 없는 달' 이라고 했다. 끝나지 않을 것만 같은 혹독한 겨울 추위가 끝나고 만물이 생동하는 봄을 맞이하는 달이라는 의미일 것이다. 대한민국의 창조경제에도 가을의 빛나는 열매를 가져다줄 따뜻한 봄 햇살이 비추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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