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말 경기도 광주의 한 아파트 분양에 당첨된 김모씨는 고민 끝에 계약을 포기했다. 시장 분위기가 좋다는 소식에 웃돈을 예상하고 청약해 당첨은 됐지만 웃돈이 전혀 붙지를 않아서다. 김씨는 "일단 계약을 하고 전매를 할까도 생각해봤지만 대출도 부담되고 자칫 발목을 잡힐 수 있을 것 같아 계약을 포기했다"고 말했다.
아파트 분양시장의 열기가 더해지는 만큼 청약과열에 따른 부작용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전매제한 완화로 단기 시세차익을 노린 가수요가 청약시장에 가세하면서 시장에 거품이 낄 수 있는데다 오는 3월 청약 1순위 자격이 완화되면 이 같은 현상은 더욱 심해질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박원갑 KB국민은행 부동산수석전문위원은 "잇따른 규제완화로 청약시장이 투기시장으로 바뀔 수 있다"며 "청약시장의 이상 과열은 시장 참여자들이 상황을 오판하는 여지를 줄 수 있고 이는 자칫 기존 주택 거래에도 악영향을 끼칠 수 있다"고 지적했다.
13일 건설업계에 따르면 최근 아파트 청약시장에서 당첨자들의 자발적 계약 포기가 늘고 있다. 자금계획이 틀어지는 등 피치 못할 사정도 있지만 웃돈을 노리고 청약에 나섰다가 포기하는 사례가 부쩍 증가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한 중견 건설사 관계자는 "아직 우려할 수준은 아니지만 일부 지역에서는 예전보다 미계약 세대가 늘어난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며 "단타를 노린 투자수요가 그만큼 늘었다는 방증"이라고 말했다.
대한주택보증에 따르면 지난해 3~6월에 분양한 전국 아파트의 초기 분양률은 78% 수준에 불과했다. 특히 청약열기가 거셌던 서울은 48.6%로 50%가 채 되지 않았다. 높은 청약경쟁률을 감안하면 청약률과 계약률의 괴리가 크다는 의미다.
아직은 가수요가 청약시장에 활력을 불어넣는 등 긍정적으로 영향을 미치고 있지만 부작용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특히 3월 이후 수도권 청약 1순위 요건이 2년에서 1년으로 완화되면 1순위 청약자들이 대거 양산되고 가수요가 폭발적으로 늘 수 있다는 분석이다.
청약과열은 시장 참여자들의 관심을 분양시장으로만 이끌어 기존 주택시장을 더 침체시킬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김규정 NH투자증권 부동산팀장은 "지난해도 청약시장에 비해 기존 주택시장은 상대적으로 좋지 못했다"며 "청약제도가 바뀌면 분양시장에 대한 쏠림현상은 더 커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실수요자들에게도 피해가 갈 수 있다. 정작 집이 필요한 사람에게 당첨기회가 줄어들게 되며 분양가상한제 탄력운용과 맞물려 분양가 상승 가능성도 우려된다.
박 위원은 "올 상반기까지는 청약시장이 호황을 누릴 수 있지만 하반기 이후에는 청약과열에 대한 부작용이 나타날 수 있다"며 "청약시장이 투기판이 되는 것을 막는 장치도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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