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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을 사람이게 하는 특성은 무엇일까? 인간의 직립성부터 도구의 사용, 유흥성, 사회성 등이 인간의 특징으로 꼽힌다. 하지만 이 책은 외적·기능적 특성이 아닌 내적 '마음'에 주목한다. 그리고 그것이 20만 년 전 호모 사피엔스의 출현 이래로 인류를 지탱했던 핵심이라고 파악해 추적했다. 저자들은 2012년 일본에서 인기리에 방영된 NHK다큐멘터리 '휴먼'의 제작진으로, 책은 실제 방송 내용에 촬영 뒷이야기까지 더했다. 마음을 개인적인 것으로 보지 않고 인류 진화의 공통 산물이라고 본 접근이 독창적이다.
책의 첫 장은 호모 사피엔스의 고향인 아프리카로 향한다. 20만 년 전 아프리카의 인구는 1만 명 정도라 드넓은 땅에 흩어져 살고 있었다. 멀리 떨어져 살았어도 그들에게는 '나눔'의 관계가 존재했다. 가뭄이 들어 먹거리가 부족해지면 다른 지역의 친구에게 옮겨 가 살았다. 7만 4,000년 전 토바 화산의 분출 이후 기온이 급감하고 가뭄이 들어 식물이 말라죽는 시련이 닥쳤다. 이 시기를 살아서 넘겨야만 진화가 가능했다. 힘 센 놈이 살아 남았을까? 아니다. 싸워서 정복하고 식량을 획득한 무리가 살아남은 게 아니라, 싸우지 않은 무리가 끝까지 살아남았다는 증거들이 발견됐다. 살아서 진화한 호모 사피엔스 무리는 집단 내 뿐 아니라 가까이 있던 다른 집단과도 싸우지 않았다. 물론 다른 학설도 존재하지만, 저자들은 이를 통해 인류가 진화와 함께 간직해 온 마음이 '협력하는 마음'이며 '나누는 마음'임을 확인했다. 실제로 아동심리학 연구에 따르면 인간 유아기의 첫 행동 중 하나는 물건을 집어 제 입안에 넣는 것이고 동시에 다음 행동은 다른 사람에게 주는 것이다. 두 살 배기 아이가 딸기를 먹여주는 엄마 입에도 딸기를 넣어주려 하는 행동은 본능이며, 이같은 '나눔' 마음은 인간다움을 구분 짓는 특징이 된다는 주장이다. 유인원인 침팬지는 서로 나눠 먹지 않는다.
화산 분화에서 살아남은 호모 사피엔스의 일부는 아프리카를 탈출했고, 수렵 채집 생활을 하던 이들이 맞닥뜨린 위험은 덩치 큰 짐승이었다. 특히 같은 호모 에렉투스에서 진화했으나 힘이 더 센 다른 인간 종, 네안데르탈인이었다. 하지만 호모 사피엔스에게는 더 훌륭한 무기가 있었으니, 바로 '던지는 무기' 투척구였다. 네안데르탈인은 창 같은 무기로 거대 동물들과 접근전을 했다면, 인류의 조상은 작고 날카로운 석기를 투척구에 달아 멀리서 던져 보다 안전하게 큰 동물을 잡았다. 눈에 띄는 점은 호모 사피엔스가 투척구를 내부의 적을 다스리는 데도 사용했다는 것. 기여하는 것 없이 얻어 먹기만 하려는 프리라이더(무임승차자)를 처벌하는 도구로도 투척구가 이용됐다. 즉 투척구 같은 던지기 도구의 발달은 집단의 확장을 이끌었는데, 여기서 인류가 협력·소통하는 마음과 더불어 처벌하려는 마음도 함께 진화시켜 왔음을 알 수 있다. 저자들은 오늘날 핵무기가 이같은 던지기 도구 진화의 한 갈래라고 지목한다.
또한 농경 혁명은 미래를 생각하는 마음의 진화를 가져왔다. 씨뿌리는 마음은 하루 벌어 하루 먹는 마음과 달리 몇 달 뒤 수확기를 생각하게 했고, 인간은 침팬지처럼 순간 기억 능력이 좋지 못하지만 상상력을 발휘하거나 계획을 세우는 등 미래를 향한 마음을 다졌다. 또한 동전(화폐)의 발생은 무한한 욕망을 부추기게 됐다. 화폐 등장 이전에는 부와 권력을 가진 사람이 자신의 것을 다른 사람에게 줌으로써 덕을 쌓았으나, 돈이 탄생하자 소유에 대한 개인 욕망이 커졌고 무한 욕망의 시대가 열렸다.
저자들의 기획의도는 기후변동, 전쟁 위기, 빈부 격차 등 위기에 빠진 인류가 300년 뒤에도 생존할 수 있을 것이냐는 질문에서 시작됐다. 결국 마음이란 본능과 욕구를 넘어 의지·감정·습관·교육의 성과로 어우러진 역사적 산물이자 진화의 산물이다. 이 마음을 어떻게 다스리느냐에 인류의 미래도 달려있다. 1만8,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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