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 출범한 그리스의 급진좌파 정부가 거침없는 반(反)긴축 행보를 보이자 글로벌 투자가들의 그리스 이탈이 가속화하고 있다. 급진좌파 연합 시리자를 이끌고 있는 알렉시스 치프라스(40) 총리는 신속하게 우파정당과의 연정, 강성 좌파내각 구성을 마무리 지은 뒤 국영기업 민영화 전면중단을 전격 선언했다. 이는 다음달로 예정된 채권단과의 구제금융 협상이 난항을 겪을 수밖에 없음을 예고한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28일(현지시간) 치프라스 총리는 첫 각료회의를 열어 급격한 변화를 강조했다. 그는 "우리는 기존 정부와 정책의 방향을 급격히 바꾸기 위해 집권했다"며 "긴축정책으로 생활이 파탄 난 유권자들을 실망시킬 수 없다"고 장관들에게 말했다.
이날 그리스 정부는 전날 피레우스항 지분매각 중단에 이어 전력·도로·공항 관련 국영기업들의 민영화 계획을 전면 보류했다. 그리스는 지난 2010년 국제채권단인 '트로이카(유럽연합·유럽중앙은행·국제통화기금)'에 공기업 민영화, 공공 부문 인력 구조조정, 연금개혁 등을 조건으로 자금을 수혈받았다. 당시 그리스 정부는 국영기업 지분매각으로 총 220억유로를 마련하겠다고 약속했다. 지난해까지 매각을 완료한 지분은 총 77억유로였으며 올해도 추가로 25억유로 규모의 매각을 진행할 예정이었다. 민영화 전면중단은 조만간 있을 구제금융 협상을 위한 사전포석으로 풀이된다.
이 밖에 새 정부는 법원으로부터 부당해고 판결을 받은 공공 부문 해고노동자들을 복직시키는 한편 빈곤 노령층에 대한 연금인상 방안도 발표했다. 또 최저임금을 현재 월 680유로에서 750유로로 인상하겠다는 계획도 내놓았다.
선거 직후부터 치프라스 총리는 구제금융 재협상을 염두에 두고 긴축을 강조하는 독일 등을 겨냥한 행보를 보이고 있다. 선거 당일 승리의 윤곽이 잡히자마자 반긴축을 강력하게 주장하는 우파 정당 '그리스독립당'과의 연정을 이끌어냈다. 취임 첫날에는 독일 나치에 희생된 그리스 레지스탕스 묘역을 참배하고 전쟁배상금을 내놓으라며 독일의 심기를 건드렸다. 또 유럽연합(EU)의 긴축 요구를 '재정 고문(拷問)'에 비유하는 강성 좌파 경제학자 야니스 바루파키스 아테네대 교수를 재무장관으로 입각시켜 구제금융 협상이 험난할 것임을 예고했다. 외교적으로는 서방과 대치 중인 러시아의 외교사절을 처음 만나 러시아와의 결속을 과시하며 EU 외교가에 파문을 일으켰다.
독일을 중심으로 한 EU국들은 치프라스 총리의 저돌적인 행보에 놀라는 크게 눈치다. 반긴축·부채탕감 등을 선거 승리를 위한 수사쯤으로 여기고 결국 집권하면 현실을 직시하고 타협적으로 나올 것임을 내심 기대했기 때문이다. 로이터통신은 "시리자의 압승과 이후 연정 타결, 그리고 총리의 행보를 보고 놀랐다"는 독일 정부 관계자의 말을 인용하며 "지난 며칠간 치프라스 총리의 행보는 독일의 예상이 빗나갈 수 있음을 보여줬다"고 분석했다.
투자가들의 이탈도 한층 빨라지고 있다. 이날 아테네증시의 종합주가지수는 9.24% 폭락하며 취임 이후 3일간 총 15% 이상 하락했다. 특히 뱅크런이 일어나고 있는 은행 업종은 구제금융을 받지 못할 수 있다는 우려감으로 이날 하루 25%, 지난 3일간 총 40%나 빠졌다. 그리스 국채 3년물은 2%포인트 급등하며 장중 한때 17%까지 치솟았다. 10년물도 10.5% 수준에 육박했다.
국제신용평가사인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는 이날 그리스 신용등급을 감시 대상으로 지정했다. 이에 따라 'B' 등급인 그리스의 국가신용도가 내려갈 가능성이 커졌다. S&P는 긴축에 반대하는 새 정부의 일부 정책 때문에 그리스가 국제채권단과 갈등을 빚고 있다고 경고했다. 알베르토 갈로 로열뱅크오브스코틀랜드(RBS) 애널리스트는 "그리스는 핵폭탄을 갖고 위협하고 있다"며 "이는 자칫하면 채권자와 채무자 모두를 파멸시킬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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