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중 자유무역협정(FTA) 체결에 대한 우리 정부의 입장이 변화하고 있다. 농수산물 수입 급증 등을 우려한 그동안의 '소극적 입장'에서 중국시장을 겨냥한 '적극적 자세'로 바뀌고 있다. 김종훈 통상교섭본부장은 지난 10일 중국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천더밍 중국 상무부장과 가진 한중 통상장관 회담에서 양국 간 경제통상 협력의 방향과 목표를 제시한 '한중 경제통상 협력비전 보고서'에 서명하고 한중 간 FTA 체결도 검토하기로 했다. 이번 보고서는 2005년 체결한 기존 보고서를 '전략적 협력 동반자 관계'에 걸맞게 수정ㆍ보완한 것으로 이를 통해 답보상태를 보이던 양국 간 FTA 협상이 진전되는 전기를 맞을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그러나 한중 FTA는 한미 FTA보다 피해산업이 훨씬 크고 충격도 광범위해 앞으로 논의의 진전에 따라 커다란 찬반논란으로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한중 FTA에 대한 정부의 자세변화=그동안 정부는 한중 FTA에 미온적이었다. 무역규모를 감안한 가중관세는 중국이 4.5%로 한국의 7.29%보다 낮다. 더구나 대중수출의 절반은 중국에 부품을 수출한 후 완제품을 만들어 3국으로 재수출하는 가공무역이었다. 중국 내수시장이 크지 않은 상황에서 한중 FTA는 수출이 늘어나는 것보다 수입의 증가폭이 더 클수 밖에 없다는 판단이었다. 농촌에 미치는 영향은 더 부정적이다. 중국은 농산물에 대해 관세가 25.6%인 반면 한국은 두배가 넘는 52.5%다. 중국산의 낮은 가격경쟁력을 관세로 방어하고 있는 셈이다. 또 중국에는 이미 대부분의 다국적 기업들이 진출해 있어 한중 FTA를 맺으면 이들 기업이 한국에 무혈입성해 시장을 잠식할 것이란 우려의 시각도 많았다. 그러나 글로벌 금융위기를 거치면서 정부의 인식이 바뀌고 있다. 금융위기 이후 미국 소비시장이 크게 위축된 상황에서 중국에 대한 수출비중은 더 높아질 수밖에 없다는 판단이 섰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중국 내수시장 진출이 한국의 중장기 성장에 필수조건이 된 상황에서 더 이상 소극적으로 대처할 수 없다는 계산으로 보인다. 또 중국 농산물의 경쟁력이 하락해 FTA에 따른 한국의 충격은 크지 않을 것이란 분석이 나오고 있다. 중ㆍ대만 간의 '차이완 FTA' 체결 임박도 우리 정부의 자세변화 원인으로 지목된다. 대만과 중국 언론들에 따르면 중국과 대만 간의 사실상 FTA인 양안 간 경제협력체제협정(ECFA) 체결 서명이 내년 봄 이전에 이뤄질 것으로 전망된다. 대만의 경제회복 핵심 정책으로 추진 중인 ECFA가 체결되면 내년부터 대만의 주력 제품인 반도체ㆍ액정표시장치(LCD) 등에 대한 중국의 수입관세가 폐지되거나 낮춰지고 서비스 및 투자시장이 개방되는 등 무역장벽이 사라진다. 결국 대만과 경쟁관계에 있는 LCD와 반도체 등의 분야에서 한국 기업의 대중 수출 전선에도 부정적 영향이 가시화되는 것이다. LG경제연구원의 한 관계자는 "양안 간 경협은 단기적으로 관세인하 프로그램의 가능성이 크며 이 경우 한국산 제품 상당 부분이 경쟁력 열세에 놓일 우려가 크다"고 말했다. ◇한중 FTA 체결, 신중하게 접근을=전문가들은 "한중 FTA는 10년 전부터 논의가 된 이슈로 언제 체결하느냐는 시기의 문제였다"며 "글로벌 금융위기로 예상보다 몇 년 앞당겨진 셈"이라고 평가했다. 우리나라의 중국에 대한 수출의존도가 계속 높아지면서 거부할 수 없는 대세였다는 것이다. 중국은 2003년 이후 수출에서는 1위, 수입에서는 2위를 차지했다. 중국이 수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2000년 10.7%에서 2006년 21.3%로 두배 이상 증가했다. 반면 같은 기간 미국은 21.8%에서 13.3%, 일본은 11.9%에서 7.3%로 감소했다. 수입에서 차지하는 비중 역시 중국은 같은 기간 8%에서 11.9%로 높아진 반면 미국은 18.2%에서 10.9%, 일본은 19.8%에서 16.8%로 낮아졌다. 문제는 한중 FTA의 충격이 한미 FTA를 훨씬 능가할 것이란 점이다. 대중수출이 증대하면서 수입도 큰 폭으로 늘어날 수밖에 없고 이에 따른 관련 산업의 타격이 불가피하다. 유승록 포스코경영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은 "한중 FTA를 체결하면 경쟁력이 약한 산업은 강한 구조조정 압력을 받게 될 것"이라며 "일부 산업의 반대로 FTA 전체가 무산되지 않도록 피해산업에 대한 적절한 대책과 배려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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