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창중 전 청와대 대변인의 몰지각한 행실이 한국 정치를 뒤흔들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사과했으나 파문이 쉽사리 가라앉을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미국 방문 동안의 성과에 대한 긍정적인 평가가 박 대통령의 지지도의 상승으로 나타나고 임기 초의 국정 동력의 저하가 바닥을 찍으면서 다시 탄력을 받을 수 있는 시점에서 부딪친 전무후무한 악재다. 개성공단의 사실상 폐쇄 타개책에 대한 한미 정상 언급의 부재,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에서의 투자자 국가소송제에 대한 입장 표명, 전시작전권 전환과 원자력 협정과 관련한 양국의 미묘한 차이에 대해 원론적 수준에서의 언급만 있었던 것은 한계로 지적될 수 있다. 그러나 박 대통령의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와 동북아 평화 협력 구상에 대한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의 지지와 군사ㆍ경제 분야에 국한했던 양국 관계의 글로벌 파트너십으로의 격상 등 한미 동맹 60주년의 미래지향적 평가에 인색할 필요는 없다.
청와대 조기쇄신 여부에 성패 달려
그러나 국내 정치에서의 확고한 지지와 자발적인 동의가 전제되지 않는 외교적 성과는 공허하다. 외교는 국내 정치의 연장이다. 윤 전 대변인의 성추행 의혹이 한 개인의 치부로 환원될 수 없는 이유이다. 윤 전 대변인 사건이 국내 언론을 통해서 알려진 지 벌써 엿새째를 맞고 있다. 사건의 본질이 무엇이냐의 사안과는 별개로 이 사건은 여러 갈래로 확대 재생산되고 있다. 이남기 홍보수석과 윤 전 대변인의 진실공방, 청와대의 위기 관리 능력과 상황 판단의 안이함, 사건의 축소ㆍ은폐 의혹, 청와대 비서진 문책의 범위, 박 대통령 사과의 방식과 내용에 대한 야권의 비판 등 다양한 정치 쟁점으로 비화하고 있다. 비등점을 향해 치닫는 휘발성 강한 에너지를 규합해가는 양상이다.
야당은 윤창중 스캔들을 '콩가루 청와대'의 국기 문란 사건으로 규정했다. 성장동력의 저하와 경제민주화 입법의 딜레마에 봉착한 한편 여전히 진행 중인 한반도의 긴장과 맞물린 안보경제적 균열에 대해 정치의 선도적 조정 역할은커녕 자칫 '윤창중 블랙홀'로 빠져들 수 있는 형국이다. 2008년의 이명박 정부 임기 초반 때의 쇠고기 파동의 기억은 아직도 생생하다. 문제는 집권세력이 민심의 소재를 알지 못하는 데에 연유한다. 민주당 등 야당이 '윤창중 성추행 사건'을 정치 쟁점화하려는 것은 자연스럽다. 그러나 정쟁으로의 비화를 차단하고 국민과 언론, 여야 정치권이 합의하는 출구전략을 모색할 수 있는 독립변수는 오로지 청와대 쇄신의 폭과 속도다. 동시에 인사 실패에 대한 솔직한 시인이 전제돼야 하며 이 역시 최고책임자의 몫이다.
인사실패 대한 자기반성 있어야
권력과 공직이 사유화돼서는 안 된다. 선출직이든, 선출직에 의해 임명된 직책이든 모든 권력과 공직은 주인인 국민으로부터 일시적으로 위임받은 것이라는 민주주의에 대한 성찰이 전제돼야 한다. 이에 대한 인식이 있었으면 이 수석의 대통령에 대한 부적절하고도 어처구니없는 사과는 상정하기 어렵다. 정치는 생물이라고 한다. 반전은 언제든지 가능하다. 그러나 그 가능성은 진정성과 감동이 전제될 때 현실로 나타난다. 국민이 원하는 건 화석화된 정치적 사과가 아니라 실패를 인정하는 자기 반성이다. 여야 정치권에 드리운 암운을 걷어낼 수 있는 것은 정치공학적 기교가 아니다. 사실 관계에 대한 제삼자적 관찰자 관점이 아닌, 주관화된 대자적 관점에 기반한 자기성찰이다. 그것이 정국을 돌파하고 주도권을 거머쥐는 진정한 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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