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학을 탄생시키고 수많은 제자를 길러낸 공자는 위나라 관학(官學)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대가로 좁쌀 90톤을 연봉으로 받았다. 그 가치를 따지자면 한 사람이 280년 간 먹을 수 있는 양이었다. 또한 공자가 취푸에 보유하고 있던 집은 33묘의 부지에 방 3칸이 있는 곳으로, 일반 가구가 대부분 5묘 부지의 주택인 것과 비교하면 호화주택이었다.
공자의 제자인 맹자는 연봉에서 스승을 150배나 앞질렀다. 지금의 화폐가치로 환산하면 100억원 대 연봉자였다. 중국의 각 제후국 왕들에게 선물로 받은 금(金)까지 더해 맹자는 전국 순위에 들 만큼 부자였다.
당나라 유랑 시인 이백은 천하를 떠도는 데 교통비가 필요했고, 술고래였던 탓에 술값도 필요했다. 때문에 그는 글을 팔아 얻은 '원고료'를 주 수입원으로 삼았다. 원고료의 경우 당나라의 한유는 비문에 쓴 글자 하나당 80위안씩 1,505자에 12만 위안에 해당하는 비단을 받았으니 그보다 더 유명했던 이백은 수십만 위안 이상을 벌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 책은 고전 속 위인들이 주인공이긴 하지만 그들의 사유와 삶의 지혜를 탐구하는 대신 지극히 세속적인 눈으로 그들의 경제생활을 파헤쳤다. 아무리 비범한 사상가나 시인, 장군이라 할지라도 지켜야 할 가족이 있고 먹고 살아야 할 일상이 있기에 어떻게든 생계를 유지하고 경비를 마련해야 했다는 점에 착안한 것. 묵자와 조조, 도연명, 백거이, 당백호, 엄숭 등의 수입과 지출, 부의 축적과 부동산, 빚과 생계비 등을 낱낱이 파헤쳤다.
중국 성리학의 대가인 정이는 "군자는 물질을 부리고 소인은 물질의 노예가 된다"고 말했는데 이는 군자가 물질을 배척했다는 게 아니라 물질의 노예로 전락하는 것을 경계했음을 뜻한다. 책은 "진정한 현인(賢人)은 의리를 수양할 뿐 아니라 실리를 추구할 줄 안다"는 점을 교훈으로 전한다. 1만8,000원.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