맞벌이 부부가 늘면서 주변에 할머니, 할아버지에게 맡기는 게 흔해졌다. 쩔쩔매는 자식들을 보다 못해 노년의 한가로움을 포기하고 다시금 양육 전선에 뛰어든 조부모가 그만큼 많아졌다는 뜻이다. 정부가 출산을 장려한다지만, 육아에 있어서 만큼은 현실과 정책의 여전한 '간극'을 가족의 힘으로 메우는 경우가 허다하다. 정부가 손주를 돌보는 할머니에게 월 40만원을 지급하겠다는 아이디어를 낸 것도 이런 간극을 좁히려는 취지로 보인다.
맞벌이인 딸 내외를 대신해 아내와 함께 손자를 돌보게 된 저자도 손주를 돌보는 수많은 조부모 중 하나다. 20여 년간 100여권의 역서를 남기며 전문번역가로 활동해온 저자가 외손자를 돌보며 경험한 힘들면서도 경쾌한 하루하루를 기록해 내려갔다. 배꼽을 잡고 웃게 만드는 손자의 유쾌한 재롱, 다칠까 봐 가슴을 쓸어 내렸던 아찔했던 사건 등 육아과정에서 겪는 기쁨과 어려움을 진지하면서도 시종일관 유머를 잃지 않으며 녹여냈다. 노부부가 손자를 위해 각종 만화 캐릭터를 섭렵하고, 입이 짧은 손자에게 밥을 먹이기 위해 들이는 갖은 노력은 가족이 아니면 결코 줄 수 없는 깊은 사랑을 보여준다.
이 책이 인상적인 건 구슬을 꿰듯 육아일기 처음부터 끝까지 등장하는 다양한 동요의 노랫말이다. 저자는 누구나 알 만한 동요부터 어릴 적 부른 작가 미상의 추억 속 동요까지 수십 편의 노래를 매개체로 손주를 돌보는 현실과 딸을 키웠던 과거, 그가 유년을 보냈던 추억을 넘나들며 인생 전반을 아우르는 작은 깨달음들에 감사한다. 육아를 노동이 아닌 만년의 큰 축복으로 받아들이는 노부부의 육아일기는 가족의 소중함과 육아의 고단함, 만년의 추억을 되돌아보는 계기를 마련해줄 것으로 보인다. 1만 3,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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