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짧은 장마기간에 비가 집중적으로 내리고 이때 내리는 비가 연간 강수량에 절대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환경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렇게 들쭉날쭉한 강수량과 그에 따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일찌감치 4대강 사업이나 빗물수집 계획 등 물 산업에 관심을 가져왔는데 이런 경험들이 결국 세계 물시장에서 활약하는 데 특별한 강점으로 작용할 겁니다."
폴 라이터 국제물협회(IWAㆍInternational Water Association) 사무총장은 9일 서울경제신문과의 e메일 인터뷰를 통해 한국의 물 산업에 대해 이같이 전망했다.
폴 사무총장은 세계 최대의 물 전문가그룹인 IWA에서 10여년간 사무총장직을 맡아온 30년 경력의 물 전문가로 부산 벡스코에서 오는 16일부터 6일간의 일정으로 열리는 '2012 IWA 세계물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이번주에 방한할 계획이다.
그는 사실 한국의 경우 지리적ㆍ환경적으로 물 관리에 유리한 국가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태풍의 영향권에 위치한데다 최근 빠른 도시화로 태풍의 영향이 더욱 강해지고 빈번해져 물 관리가 어렵기 때문"이다.
그는 그런 이유가 오히려 한국의 물 관리 경험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 것으로 평가한다. 그는 "태풍과 홍수에 따른 빈번한 피해가 결국 한국 정부가 물 관리에 한발 앞선 관심을 갖는 계기로 작용한 셈"이라며 "인구 1,000만명의 복잡한 도시인 서울이 36시간이라는 길지 않은 시간에 강수량 1m가 넘는 물을 맞닥뜨려도 큰 피해 없이 대처하는 것을 보고 감탄했다"고 말했다. 이런 노력들이 미래 물시장을 장악하는 데 상당히 큰 도움이 될 것이라는 말이다.
그는 그러면서도 한국의 물 부족 문제에 대해서는 우려를 나타냈다.
실제 우리나라는 대표적인 물 부족 국가 중 하나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지난 3월 'OECD 환경전망 2050' 보고서에서 한국이 34개 회원국 중 '물 스트레스'가 가장 높은 국가라고 평가했다.
연간 농업ㆍ공업용수 등으로 사용할 수 있는 가용 수자원에 비해 물 수요의 비중이 높아질수록 사람들의 물 이용이 어려워지고 물 스트레스가 높아진다. 우리나라의 경우 이 물 수요의 비중이 OECD 국가 중 유일하게 40%를 넘었다. OECD는 또 한국이 34개 회원국 가운데 물 수지(water balance)가 가장 위험한 국가라고도 지적했다.
라이터 사무총장이 몸담고 있는 IWA도 한국의 물 빈곤지수(Water Poor Index)가 OECD 회원국 중 20위로 심각한 수준이라고 언급한 바 있다. 물 빈곤지수는 1인당 수자원량과 수자원 접근율, 물 이용량과 사회경제요소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매겨진다. 우리나라는 특히 1인당 수자원량의 점수가 6.1점으로 세계 147개국 가운데 117위로 극히 낮은 편이다.
이처럼 물은 부족하지만 정작 물 소비량은 꽤 높은 편이다. 한국인의 1인당 1일 물 소비량은 약 333리터로 OECD 국가 대부분의 도시보다 높다. 물 빈곤지수지표를 봐도 147개국 중 106위로 하위권에 머무르고 있다.
그는 "한국은 1인당 가용 물 자원량이 매우 낮은 편인데 매년 여름이면 집중호우로 홍수가 나는 경우가 많다"며 "이런 경험을 하는 국가에서 시민들에게 항상 책임감 있는 물 사용을 당부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라고 설명했다.
물론 이런 현상은 우리나라에만 국한된 일이 아니다. 물 자원은 수요나 투기ㆍ형평성 등의 문제로 몇몇 국가를 제외하고는 대부분이 국가 소유ㆍ관리 체제로 운영된다. 이 덕분에 낮고 안정적인 가격으로 물을 이용할 수 있지만 역설적으로 물을 낭비하는 문제가 발생한다.
그는 "물 소비는 강수량, 강수형태, 국가의 농업 및 산업구조, 국민소득 및 자산규모 등 다양한 요인의 영향을 받지만 이와 상관없이 국가별로, 개인별로 차이가 많다"고 소개한다.
그는 일례로 전세계 1인당 물 사용량의 차이를 들었다.
"최신판 IWA 안내서 '국제 물 서비스 통계자료'에 따르면 가정 및 소규모 사업장의 1인당 물 소비량은 하루 41리터에서 721리터까지 다양합니다. 흥미롭게도 이는 선진국 사이에서도 뚜렷하게 나타나는데, 일례로 브뤼셀의 1인당 소비량은 스톡홀름의 3분의1 수준에 불과합니다. 결국 물 부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국민들의 인식이 바뀌어야 하며 국가ㆍ지역ㆍ도시 차원의 끊임없는 문제제기가 필요합니다."
그는 세계적으로 물의 투자가치가 더욱 높아지리라는 전망에 동의한다. 이런 물 부족 문제는 한국뿐 아니라 전인류가 직면할 가장 심각한 문제 가운데 하나이기 때문이다. 그는 향후 물 문제에 대처하는 능력이 곧 국가경쟁력까지 좌우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물은 금이나 다이아몬드에 비해 훨씬 빠른 속도로 부족해지고 있습니다. 인구변화를 통제할 경우 물 사용량은 GDP 성장률의 50%에 해당하는 비율만큼 증가한다고 밝힌 보고서가 있습니다. 세계경제가 발전을 거듭하는 한 물 수요는 지속적으로 증가할 수밖에 없지만 우리가 먹을 수 있거나 산업용수 등으로 사용할 수 있는 물은 한정돼 있습니다. 물 부족에 준비해야 하는 이유지요."
그가 몸담고 있는 IWA는 이런 세계 각국의 물 자원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지속 가능하고 실현 가능한 정책 및 실무를 유도하는 기구다.
협회에 소속된 전문가그룹은 각 국가의 각기 다른 현재 상황 및 미래의 동향을 여러 방면으로 고려해 그 나라에 꼭 맞는 활동을 기획해준다. 맞춤형 물 솔루션을 제공하는 셈이다.
일례로 IWA의 스마트워터클러스터(Smart Water Cluster)에서는 다양한 형태의 새로운 수자원에 대해 어떻게 적정가격을 확보해 리스크를 줄이고 활용 효율을 높일 수 있는지에 대한 관리방법론을 도출, 자문한다. 스마트네트워크클러스터 같은 전문가모임은 상하수도에 관련되는 다양한 네트워크를 보다 현명하게 설계ㆍ관리ㆍ운영함으로써 효율을 높이는 한편 비용과 리스크 절감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노력한다.
그렇다면 그들이 내놓는 물 위기 극복책은 무엇일까.
라이터 사무총장은 "결국 현재 사용할 수 있는 물 자원을 잘 보존하는 한편 한번 사용한 물을 정화 후 재활용ㆍ재사용해 수자원이 낭비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특히 빗물 재사용을 주목하고 있다. 강수량이 많은 시기에 물을 저장했다가 부족할 때 사용할 수 있도록 하자는 간단한 아이디어다. 이 방안은 수자원을 안정적이고 풍부하게 확보할 수 있게 도와주는 것은 물론 홍수 등 기후변화에 따른 재난에도 대응할 수 있게 한다.
최근 국내에서도 도시에 '거대한 물그릇'을 마련해 홍수 때 물을 모아 가뭄 때 방출하자는 아이디어가 오가며 여러 지자체에서 실제 빗물저류 시스템 구축을 위해 심혈을 기울이고 있기도 하다.
그는 "바닷물을 민물로 바꾸는 저에너지 해수담수화 등의 기술확보도 물 부족 문제와 관련된 현재의 위기상황을 극복하는 열쇠가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지금껏 이용하기 힘들었던 새로운 수자원을 발굴해내는 작업인 셈이다.
그는 "사용할 수 있는 물을 효율적으로 이용하고 한번 쓴 물을 다시 활용하며 현재 이용하지 못하는 물을 가용 수자원으로 개발하는 기술을 확보하는 세 가지 노력이 동시에 이뤄져야 물 선진국가로 우뚝 설 수 있을 것"이라며 "앞으로 물의 가치가 계속 높아지고 세계 물시장이 확대될 경우 이런 노력은 한국이 다시 한번 도약할 수 있는 분명한 기회로 돌아올 것"이라고 말했다.
130개국 석학·기업 참여… 기후변화·에너지 지식 등 공유 김경미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