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정부 일각에서 가계부채 때문에 한국은행에 통화관리를 주문, 7월 기준금리 동결이 예상됐다. 그러나 한은은 경기침체에 선제 대응해 기준금리를 13개월 만에 0.25%포인트 내렸다. 전격적인 금리 인하는 경기가 예상보다 안 좋다는 반증으로 작용해 주가가 하락하고 가계부채가 늘어나며 물가에 부담을 줄 것이라는 우려가 제기됐다.
가계부채 문제를 통화정책만으로 해결할 순 없지만 사태가 이렇게 된 데는 금리정책을 비대칭적으로 해온 한은의 잘못도 크다. 경기활황기에 선제적 금리 인상으로 통화관리를 제대로 했어야 하는데 그렇게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기존 통화정책체제는 금리 경로만 중시하고 통화ㆍ신용상황을 경시했다는 지적이 많았다. 때늦은 감이 있지만 이제라도 통화관리가 중요하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어 다행이다.
신축적 통화관리, 금리 인상 어려워
한은도 통화관리 필요성을 인식, 통화량을 고려하는 방안으로 현행 물가안정목표제를 유지하면서 테일러 준칙에 유동성 갭을 추가하는 방안, 유럽중앙은행(ECB)의 경제, 통화분석 양축(two-pillar)시스템 도입 등을 검토하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이들 역시 현행 체제와 같은 문제점이 있다. 현행 체제는 단기금리를 운용목표로 하며 단기금리 조절이 유일한 수단이다. 그래서 첫째, 단기금리 하나로 물가ㆍ성장ㆍ금융 안정 등 상충되는 목표의 동시 달성이 쉽지 않다. 둘째, 금리 인하에 비해 금리를 인상하기 어렵다. 특히 가계ㆍ기업ㆍ농가ㆍ학생ㆍ국가 등 부채가 많은 이해당사자는 금리 인상을 싫어하므로 대칭적 금리정책을 기대하기 힘들다. 셋째, 금리와 통화량이 함께 묶여 있기 때문에 목표금리를 동결하면서 통화량을 관리하기도 어렵다. 넷째, 수요 측 인플레이션 압력이 있을 때 기준금리를 선제적으로 조절하는 구조여서 물가가 낮은 수준에서 안정되면 금리를 선제적으로 인상할 논거도 약하다.
그렇다면 대안은 없는가. 물가안정목표제에 채널시스템이나 '지준부리(지급준비금에 대한 이자)체제'도입 방안을 검토해볼 만하다. 채널시스템은 은행이 목표금리보다 약간 높은 금리로 중앙은행에서 차입하거나, 약간 낮은 금리로 여유자금을 중앙은행에 예금하는 대기성 여수신제도를 기반으로 목표금리가 대출금리~예금금리 범위 안에서 움직이게 한다. 따라서 지준을 움직이지 않고도 예대금리 차이만 변경해 목표금리를 조절할 수 있다.
지준부리체제는 은행의 중앙은행 예금에 시장금리를 지급하고 이를 운용목표로 설정하는 방식이다. 채널시스템에서 예대금리 차이를 제로로 하면 채널시스템과 지준부리체제는 같아진다. 이렇게 하면 금리와 지준이 분리돼 금리는 거시경제 안정, 지준은 금융 안정을 위해 독립적으로 사용할 수 있다. 예컨대 목표금리는 일정 수준으로 유지한 채 지준을 경기에 따라 늘리거나 줄일 수 있고 지준은 그대로 둔 채 금리를 올리거나 내릴 수 있다.
호주·캐나다식 채널시스템 도입을
법정지준제도를 폐지한 호주ㆍ캐나다ㆍ뉴질랜드 등은 일찍부터 채널시스템을 운용, 거시경제와 금융 안정을 효율적으로 달성해왔다. 미국은 글로벌 금융위기 극복을 위해 지난 2008년 10월 은행이 연준에 예치하는 지준에 금리를 지급하는 제도를 앞당겨 도입, 채널시스템의 기반을 마련했다.
우리나라도 2008년 3월 비상시에 기준금리±일정 범위 안에서 은행이 부족자금을 한은에서 차입하거나, 여유자금을 예금하는 대기성 여수신제도를 도입해 캐나다ㆍ호주 등이 운용하고 있는 채널시스템의 기반을 이미 구축하고 있다. 따라서 채널시스템 도입은 그리 어렵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