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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최태원 이사 선임과 국민연금 의결권

최태원 SK그룹 회장을 하이닉스반도체 이사에 선임하는 과정에서 최대주주인 국민연금의 의사결정에 참여한 자문위원 2명이 사퇴하는 파문이 빚어졌다. 이들은 국민연금 의결권행사전문위원회 위원들 중 정부 측 추천으로 활동해온 교수다.

사퇴 이유는 한마디로 국민연금의 결정이 잘못됐다는 것이다. 의결위 위원 9명은 지난 10일 최 회장 이사 선임 문제에 대한 국민연금의 입장을 논의한 결과 3대3 동수가 나와 결국 중립의견을 내기로 했다. 의결권에 영향을 주지 않는 이런 결정이 이뤄진 데 불만을 품은 정부 측 위원 2명이 사퇴로 항의한 것이 사건의 경위다. 최 회장이 횡령 혐의로 불구속 기소돼 있는 상태가 이들 위원이 반대 의견을 낸 이유였음은 두말할 나위 없다.

위원들의 사퇴로 비화된 이번 사태는 보기 드문 미묘한 '사건'이다. 사퇴 자체에 대해 우선 논란이 있다. 표결권을 행사한 사람들이 사퇴하는 것은 올바른 처신이 아니라는 지적이 있다. 반면 소신을 펼 수 없는 구조가 더 이상 개선될 가능성이 안 보이면 그 구조에서 나오는 것이 맞다는 동조론이 있다.

이번 사건은 사퇴의 옳고 그름을 떠나 함의하는 바가 크다. 주요 은행들과 대기업들의 대주주인 국민연금이 앞으로 어떤 노선과 폭과 깊이로 의결권을 행사하는 것이 바람직하느냐는 문제다. 의결권을 확대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들의 논리와 반대하는 논리는 정치적 이념까지 맞물려 대단히 복잡다기 하다. 찬성론자들은 외국인 주주 견제, 주주이익 극대화, 오너의 과도한 전횡 방지 등을 이유로 들고 있다. 반대하는 사람들은 지나친 관치 가능성, 기업경영에 대한 전문성 부족 등을 강조한다.



우리는 이런 가운데서도 절충점을 찾으려고 노력한다면 관건은 국민연금 의결권의 정치적 중립성과 독립성, 그리고 주주이익 보장에 있다고 본다. 이를 위해 국민연금 내 의결권 행사기구의 구성 및 위원 추천, 운영과정 등을 다시 살펴볼 필요가 있다. 현재의 보건복지부 소속에서 떼어내 자율적인 독립기관으로 만드는 것도 검토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이 과정에서 국민연금이 자신들만의 왕국을 건설하지 않도록 감시와 견제도 강화돼야 한다.

정치권이 극단적인 대기업 때리기로 나오고 있는 가운데 국민연금의 적절한 주주권 행사는 대기업 문제 해결에 전향적인 가능성을 제시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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