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시 확인 사살을 해야 했다. 우변에 버려진 흑의 패잔병을 백이 확실하게 잡아두었어야 했다. 좌변과 좌하귀에서 박영훈이 집을 밝히다가 그 찬스를 놓치고 말았다. 막상 흑이 우변에서 준동을 하자 문제가 보통 심각한 것이 아니다. 이세돌의 흑77이 놓이자 백의 세력이 졸지에 곤마로 변해 버렸다. “집을 밝히는 박영훈의 버릇은 여전히 남아 있었군요. 입단 이전에도 그런 경향이 심해서 저한테 꾸지람을 많이 받았거든요.”(윤성현) 일단 박영훈은 78, 80으로 흑을 차단했다. 이세돌의 흑81은 절대수. 여기서 다시 박영훈은 고심했다. 8분의 숙고. 그는 원래 참고도1의 백1로 달아날 예정이었다. 그러면 흑은 2, 4로 모양을 갖출 것이 뻔한데 그 다음 백의 행마가 선뜻 내키지 않았다. 백5면 흑도 6으로 뛸 것인데 하변쪽에 은근히 외세가 쌓이는 것이 싫었다. 박영훈은 백82로 흑의 응수를 타진했는데 이 수가 실착이었다. 별로 내키지는 않아도 참고도1의 백1이 정수였던 것이다. 흑이 85로 날개를 펴자 하변 방면에 흑의 외세가 크게 불어날 전망이다. 바둑전문기자 박치문은 실전보의 백82와 86을 ‘뒷골목으로 달아난 수순’ 이라고 평했다. 너무도 기분이 좋아진 이세돌은 즐거운 심정으로 흑87에 지켰는데 이 수가 다소 옹졸했다. 백88이 빛나는 명당자리가 되었다. 흑87로는 참고도2의 흑1에 씌우는 것이 박력 넘치는 한 수였다. 백2면 흑3으로 공격한다. 이 코스였으면 흑이 압도적으로 유망했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