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역사는 용과 미꾸라지가 싸우고 타협해온 기록인지도 모른다. 상류사회에 진입하려는 도전과 계층ㆍ계급의 수질을 유지하려 봉쇄에 나서는 공방전이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펼쳐졌으니까. 신분을 향한 도전과 수성, 둘 중에 과연 무엇이 옳은가. 양론이 존재한다. 할아버지 또는 아버지가 노력한 집안과 그렇지 못한 집안의 자식이 똑같은 인생궤도를 걷는다는 것 자체가 불공평이라는 주장이 있다. 반대로 신분과 부의 대물림은 사회적 죄악이며 기회의 평등만큼은 보장해야 한다는 인식이 공존한다.
▲경제사는 속 시원한 답은 아니어도 방향을 담고 있다. 18세기 이후 폭발적 경제성장은 자유와 평등을 보편적 가치로 삼는 근대시민사회의 형성 없이는 설명이 불가능하다. 자본주의의 발전 역시 극단적 평등을 주창한 공산주의가 등장하지 않았더라면 내부 붕괴의 위기를 맞았을지도 모른다. 때로 상반되는 것 같은 자유와 평등의 가치가 서로 보완하면서 세계경제는 성장을 거듭하며 오늘날에 이른 셈이다.
▲일반고교 슬럼화가 사회문제화하고 있다. 고교뿐 아니다. 유치원부터 특목고와 자사고, 로스쿨에 이르기까지 사교육비와 등록금을 감당할 수 없는 계층의 아이들은 구조적으로 뒤처진 경쟁을 강요 받는다. 입각 전에 '자사고에 따른 일반고의 학력저하'를 우려했던 서남수 교육부 장관이 보다 현실적 대책을 내놓으리라 기대해본다. 교육의 쏠림이 가져올 다른 폐해는 '끼리'만의 문화가 형성된다는 점이다. 요즘 동창들을 만나면 용과 미꾸라지가 섞여서 잘도 지낸다. 용 나는 개천의 복원 노력에 앞서 미꾸라지와 용이 어울리는 환경부터 조성하자. 일반고 슬럼화를 방치한다면 미래를 포기하는 것이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