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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국 회담이 무산된 지난 11일 이후 남북 양측은 대화 재개를 위한 별다른 움직임을 보이지 않은 채 통신선 중단과 태도 변화 촉구 발언 등으로 신경전을 이어가고 있다.
12일 통일부에 따르면 북한은 이날 남북의 판문점 연락관 채널 가동을 중단했다. 3월 북한의 일방적 통보로 끊겼던 남북 연락 채널이 당국 회담을 계기로 재가동된 후 닷새 만에 다시 끊긴 셈이다. 정부 당국자는 이날 "북한이 12일 우리가 건 시험전화를 받지 않아 연락 채널이 중단됐다"며 "회담 무산과 관련해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북한의 행동"이라고 말했다. 정부는 전날까지 군 통신선 재개는 물론 개성공단 정상화까지 기대하고 있었지만 이번 연락 채널 가동 중단으로 남북은 또다시 '불통(不通)' 상태에 빠졌다.
정부는 북한의 태도 변화 없이는 회담에 나서지 않겠다는 입장을 내비쳐 이 같은 불통 상태는 당분간 이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류길재 통일부 장관은 이날 오전 서울 삼청동 남북회담본부에서 기자들과 만나 "(회담이 무산된 것은) 새로운 남북관계로 가기 위한 하나의 진통이 아닌가 생각한다"며 "앞으로 북한도 새로운 남북관계로 가려면 성의 있는 모습을 보여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정홍원 국무총리 또한 북측에 끌려다니지 않겠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정 총리는 이날 국회 대정부질문에 출석해 "대화라는 것은 격(格)이 맞아 서로 수용해야지 일방적으로 굴욕을 당하는 대화는 진실성이 없다"며 "지금까지는 일방적으로 (북한에) 양보했지만 이제는 남북이 격에 맞는 대화를 해야 할 시점"이라고 밝혔다. 정부는 이번 회담 무산의 책임이 우리 측 대표단 명단을 거부한 북한에 있다고 보고 별다른 후속조치를 취하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북한은 아직까지 당국 회담 무산과 관련한 입장을 밝히고 있지 않고 있다. 이에 대해 장용석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 선임연구원은 "회담이 무산된 현재의 상황에 대해 북한은 남측을 비난함으로써 책임을 회피하려 할 것"이라며 "선전전 등을 전개해 여론몰이를 할 가능성이 높다"고 밝혔다.
다만 일각에서는 이달 말 브루나이에서 열리는 아세안지역포럼(ARF) 외교장관회의가 남북 간 대화의 계기가 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ARF는 아시아ㆍ태평양 지역의 다양한 안보 이슈를 포괄적으로 다루는 회의로 우리나라와 북한을 포함해 27개국이 회원국이다.
정부 소식통은 이날 "북한이 반드시 온다는 말도 없지만 안 온다는 말도 아직 없다"며 "아세안 국가들이 북한에 대해 다소 우호적인 측면이 있기 때문에 북한이 올 가능성이 높은 것 같다"고 말했다. 북측 대표단이 참석할 경우 박의춘 북한 외무상이 수석대표로 나올 예정이라 우리 측 윤병세 외교부 장관과의 회동이 예상된다.
북한이 또 다른 형태의 회담을 제의할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 교수는 "장관급이라는 고위회담이 수석대표의 격에 관한 이견으로 무산된 만큼 북한이 실무회담으로 방향을 선회할 수 있다"며 "해당 분야 실무자들이 나오는 개성공단 정상화, 금강산 관광 재개, 이산가족 상봉 등과 관련한 실무회담을 제의할 수도 있다"고 내다봤다. 특히 북한이 미중 정상회담을 하루 앞둔 6일 우리 측에 대화를 제의한 사례를 감안하면 이달 말로 예정된 한중 정상회담 직전에 대화 제의에 나설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분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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