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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노후 사라지고 세테크만 남은 즉시연금

목돈을 한꺼번에 넣고 매달 생활비처럼 받아쓰는 즉시연금에 단 하루 동안 수천억원의 뭉칫돈이 몰렸다고 한다. 세금을 아끼려는 고액자산가들의 행렬로 운용수익에 부담을 느낀 일부 금융회사들은 급기야 판매를 중단하기에 이르렀다. 즉시연금으로 은퇴 후 생활자금을 마련하려던 일반인들은 도리 없이 계획을 접어야 했을 것이다. 이쯤 되면 연금이라기보다 세테크를 위한 투자상품이라고 봐야 마땅하다.

즉시연금은 은퇴준비를 제대로 하지 못했던 사람들이 퇴직금 등을 일시에 넣고 다달이 나눠 탈 수 있도록 고안된 노후준비용 상품이다. 하지만 최근의 가입자를 보면 이런 취지는 간 곳이 없어졌다. 연금이 목적이라면 기한 만료 때까지 목돈을 쪼개 받는 종신형을 택해야 하지만 대부분이 이자만 받다가 나중에 필요할 때 원금을 되돌려받을 수 있는 상속형에 몰리고 있다. 즉시연금이 노후를 준비하기보다 세금을 줄이거나 상속ㆍ증여세 부담을 줄이려는 고소득층의 절세수단으로 변질됐다는 의미다. 염불보다는 잿밥이라는 표현이 딱 들어맞는 대목이다.

즉시연금의 과열이 초래할 부작용은 더 큰 문제다. 금융당국은 즉시연금의 1인당 가입규모를 1억~2억원 정도로 추정하지만 실제로는 이보다 훨씬 많다는 게 정설이다. 절세를 노린 금융자산 10억원 이상 고객들이 자금을 여러 계좌에 분산 예치했기 때문이다. 고액자산가들의 이 같은 즉시연금 싹쓸이는 정작 은퇴준비를 하려던 수많은 베이비부머들의 기회를 빼앗고 있다. 특히 저금리 심화로 투자할 만한 곳을 찾지 못한 보험사들이 추가 출시를 꺼려 앞으로 연금상품 부족으로 인한 노후대비 양극화 현상까지 낳을 조짐도 보인다.



그렇지 않아도 서민들의 노후불안이 갈수록 높아지고 있는 시기에 시중 연금상품마저 일부가 독식한다면 계층 간 위화감이 노년층에게까지 번지지 않으리라고 장담할 수 없다. 금융당국과 관련업계는 즉시연금이 제 기능을 다해 사회적 안전판이 될 수 있도록 가입요건을 포함한 제도보완책 마련에 나서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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