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당인 새누리당은 실현 가능한 복지 수준을 따지고 증세가 필요하다면 하자고 했고 민주당은 보편적 복지를 상정하고 단계적 증세론을 내세웠다.
그러나 청와대는 '약속의 굴레'에 계속 끌려가며 '증세 없는 복지공약 이행'을 고수했다. 다만 현실적 재정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박근혜 대통령이 대선 후보 시절 조세개혁 등을 위해 제안한 국민대타협 카드를 만지작거리고 있다.
김기현 새누리당 정책위원회 의장은 14일 최고∙중진 연석회의에서 복지확대를 위한 증세 논란과 관련해 "이번 세법개정안을 통해 세금과 복지를 둘러싼 논쟁이 제기됐는데 우리 사회가 반드시 짚고 넘어갈 과제"라며 "그동안 서로 폭탄 돌리기라고 생각하며 쉬쉬하고 회피한 것은 아닌가 생각한다"고 말했다. 김 의장은 "국민이 어느 정도 수준의 세금을 부담하고 어느 수준의 복지를 누릴지 공감대를 만드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하며 야당을 향해 "허황된 복지공약을 무책임하게 남발하지 말고 실현 가능한 수준의 복지를 솔직히 밝히고 국민부담 증가분도 밝혀야 한다"고 촉구했다.
당 지방공약실천특위 위원장인 4선의 정병국 의원도 "공약이행 예산을 편성하는 데 무리가 있다는 게 곳곳에서 나타난다"며 "이런 상황에서는 박근혜 대통령이 지향하는 국정철학을 이행할 수 없다"고 공약 수정의 필요성을 제기했다. 정 위원장은 "정치권의 공약을 정부에 던져놓고 이행하라고 하면서 세금을 늘리면 안 된다고 하면 무슨 수로 만들 수 있느냐"고 지적했다. 홍일표 의원은 "당내에 대선 공약과 재원조달 문제에 대해 큰 틀에서 결단을 내려야 한다는 얘기가 팽배하다"고 전했다.
민주당은 대기업의 법인세 인상을 우선 요구하면서 복지공약 이행을 위한 추가 증세 등 단계적 증세론을 제기했다. 전병헌 원내대표는 이날 "법인세율 인상과 부자감세 철회로 재정구조를 먼저 개선하고 보편적 복지가 실현되는 과정에서 부족한 세수는 국민적 동의를 얻어 보편 증세로 메우는 게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심상정 정의당 원내대표는 아예 "복지국가 실현을 위해 증세가 필요하다고 설득하는 것이 정치권의 책임 있는 자세"라며 '복지증세를 위한 정치권 공동선언' 및 '국회 복지증세특별위원회' 구성을 제안했다.
정치권이 복지와 세금 문제에 대해 밥상을 차렸지만 청와대는 수저 들기를 망설였다. 청와대는 중산층 직장인의 거센 반발을 산 세법개정안에 대한 트라우마가 가시지 않은 듯 일단 세목 신설이나 세율 인상 등 직접적 증세는 고려하지 않고 있다고 선을 그었다. 법인세율 인상도 기업의 투자의욕을 꺾는 등 경제와 재정에 부작용이 더 크다고 보고 있다. 그렇다고 증세 대신 복지축소에 나설 경우 박 대통령의 국민적 지지와 신뢰가 타격을 입을 수 있어 공개 거론을 꺼리고 있다.
청와대는 당분간 소비와 투자 활성화, 수출증대에 집중해 세수를 늘려나갈 계획이지만 여의치 않을 경우 박 대통령이 제안하고 정치권도 호응을 보인 '국민대타협위원회' 발족을 통해 복지재원 등을 마련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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