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 신조 정권 출범 이전부터 일본 금융시장을 지배해온 엔화 매도-주식 매수 거래, 일명 '아베 트레이드'가 아베 정권의 지지율 급락을 계기로 역류에 휘말릴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기 시작했다. 정권 지지율 40% 붕괴를 계기로 그동안 아베 정권이 부추겨온 엔화 약세, 주가 강세 흐름이 바뀌면서 안정적 약세를 유지해온 엔화가치가 요동칠 수 있다는 것이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최근 아베 총리의 지지율이 급락하면서 그리스 사태와 중국 경기둔화의 와중에도 이어져온 아베 트레이드가 위축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아직은 엔화가치가 달러당 122~124엔대의 박스권에서 안정된 흐름을 보이고 닛케이주가지수는 2만 안팎에서 움직이는 등 시장에서 큰 변화는 감지되지 않는다. 하지만 정권 지지율이 한 달 사이 10%포인트가량 급락하는 등 국내 정치가 급변하면서 금융시장에도 변동성 위험이 커지고 있다고 FT는 지적했다. 일본 니혼게이자이신문이 지난달 말 실시한 조사에서 아베 정권 지지율은 전달의 47%에서 38%로 추락했다.
뱅크오브아메리카메릴린치의 야마다 슈스케 수석 외환전략가는 아베 총리가 심각한 정치적 위협에 직면하면 투자자들이 아베 트레이드 추세에 역행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국내 정치불안이 증시를 끌어내리고 엔화 약세에 제동을 걸 수 있다는 얘기다. 또 한편으로는 궁지에 몰린 아베 정권이 지지율을 끌어올리기 위해 일본은행의 추가 양적완화나 공적연금의 주식매입 조치 등을 동원할 가능성도 있다. 결국 아베 트레이드에 역행하는 투자자의 움직임과 경기부양책에 대한 기대감 속에 외환시장 변동성은 커진다는 것이 FT의 설명이다.
시장 전문가들이 아베 정권 지지율 하락에 민감한 반응을 보이는 것은 지난 10여년 동안의 경험 때문이다. 니혼게이자이에 따르면 일본 금융시장에는 정권 지지율 40%가 무너지면 외국인이 주식을 팔기 시작한다는 암묵의 법칙이 있다. 30%를 밑돌면 외국인 순매도가 두드러지기 시작하고 20%마저 붕괴하면 대규모 매도로 주가가 급락한다는 것이다. 주가는 엔화가치와 직결돼 움직이기 마련이다. 집권기간에 항상 지지율이 40%를 웃돌았던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는 임기 중 주가지수를 1,600포인트 가까이 끌어올렸고 퇴임 당시 엔화가치는 달러당 120엔에 육박했다. 이후 아베 1차 내각부터 2012년 노다 내각까지는 10~20%대로 지지율이 곤두박질치는 단명 내각이 연이어 들어서며 외국인의 증시 이탈과 주가 하락이 반복되고 엔·달러 환율은 2012년 노다 내각 말기 들어 80엔 밑으로 떨어졌다(엔화가치 하락). 전문가들은 아베 내각 지지율 40% 붕괴가 이 같은 악순환의 재연을 알리는 서막이 아니냐는 불안감을 내비치기 시작한 것이다.
다나카 다이스케 도이치증권 외환전략가는 "지지율이 40%를 밑돌면 정부에 대한 비판 여론에 탄력이 붙으면서 지지율이 더 떨어질 수 있다"며 높은 지지율로 증시 활황과 엔화 약세를 부추겨온 일본 금융시장의 선순환이 끊어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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