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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경제소사/11월30일] 마크 트웨인


[오늘의 경제소사/11월30일] 마크 트웨인 권홍우 편집위원 ‘계란을 한바구니에 담고 잘 지켜보라.’ 소설가 마크 트웨인(Mark Twain)이 한 말이다. 분산투자, 포트폴리오 배분 원칙과 상반된 입장을 펼칠 만큼 트웨인은 투자에 관심이 많았다. 정작 실적은 형편없다. 거덜난 적이 한두번이 아니다. 오죽하면 ‘10월은 주식투자에 극히 위험한 달이다. 또 7월과 1월ㆍ9월ㆍ4월ㆍ11월ㆍ5월ㆍ3월ㆍ6월ㆍ12월ㆍ8월ㆍ2월도 위험하다’고 말했을까. 1835년 11월30일, 미주리에서 변호사였지만 가난한 부친 밑에서 태어난 그가 본격적인 돈벌이에 나선 것은 26세부터. 미국을 휩쓴 금광열풍에 편승해 산과 강을 뒤졌지만 단 한번도 금맥을 찾지 못하고 저축한 돈만 잃었다. 파산 후 인쇄소 식자공을 거쳐 신문기자로 지내던 그가 다시 재산을 모은 수단은 소설. 20대 초반 미시시피강 수로 안내인으로 일했던 경험을 바탕삼아 출판한 ‘톰 소여의 모험’이 대박을 터뜨린 덕분이다. 트웨인의 돈은 다시 투기로 날아갔다. 광산에 대한 미련으로 빚까지 보태 투자한 광산주가 폭락하는 통에 2만5,000만달러(요즘 돈 274만달러)를 잃었다. 나이 60줄에는 더 큰 파산을 맞았다. 자신의 발명품인 자동식자기와 영양보조제 사업에 실패한 탓이다. ‘은행가란 햇빛이 내리쬘 때 우산을 빌려준 다음 비가 내리는 순간 돌려달라고 하는 인간’이라는 말을 남긴 것도 재산 50만달러(요즘 가치 5,695만달러)를 잃고 부채상환 압력에 시달릴 무렵이다. 트웨인의 말년은 해피엔딩. 인세와 강연료를 모아 빚을 갚고 재기에 성공한 그는 1910년 84세로 세상을 하직할 때까지 곁눈을 팔지 않아 유산 4,560만달러(요즘 가치)를 남길 수 있었다. 위기 때마다 본업에 흘린 땀이 평생을 구제한 셈이다. 입력시간 : 2006/11/29 1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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