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통령직인수위원회가 설립돼 헌정 사상 첫 정권 인수에 나선 것은 김영삼 전 대통령의문민정부 출범을 앞둔 지난 1992년 말 14대부터다. 직선제 부활로 당선된 노태우 전 대통령은 민정당 정권의 연장에 취임준비위원회만 꾸렸다. 하지만 문민정부 인수위도 각 부처 업무보고를 받는 데 그쳤고 1997년 국민의 정부 인수위는 외환위기 사태를 맞아 비상경제대책위ㆍ노사정위ㆍ정부조직개편위 등에 주도권을 내줬다. 법령상 탄탄한 기초 아래 인수위가 출범한 것은 노무현 전 대통령 취임을 앞둔 16대부터지만 5년 전 17대 인수위와 마찬가지로 "성공적이지 못했다"는 평가가 적지 않다.
인수위에 몸담았던 여야 정치권 인사는 물론 관료들은 18대 인수위 출범을 앞두고 이구동성으로 "욕심은 금물"이라고 강조했다. 정권을 재창출한 참여정부나 정권교체를 이룬 이명박 정부 모두 인수위 시절 전임 정권과 차별화에만 집착하며'다 바꿔'만 외치는 데 급급했기 때문이다. 17대 인수위에 참여한 여권의 한 핵심인사는 "전임 정부에서 한 일을 부정하고 없애는 데 몰두하다 보니 국정을 촘촘히 인수하지 못한 측면이 있다"면서 "협조를 받을 수 있는 일도 그러지 못했고 강압적인 인수위 분위기가 현안 파악에 장애가 되기도 했다"고 지적했다.
실제 이명박 정부가 2008년 집권 초 미국산 쇠고기 수입 문제로 전국적인 촛불집회에 직면한 것은 민감한 '먹거리 안전'을 소홀히 한 인수위 시절 정책 기조를 그대로 유지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17대 이경숙 인수위원장이 영어몰입 교육을 주장하다 '아륀지(오렌지의 미국 본토 발음) 정권'이라는 핀잔을 받으며 인수위가 적잖은 타격을 입은 것도 여론을 고려하지 않고 일방적 정책을 추진하다 역풍을 맞은 대표 사례로 꼽힌다.
탈(脫)권위를 내세운 참여정부 인수위도 대선 승리의 환희에만 젖어 부처 업무보고 등을 질타하는 데만 치중해 정부 군기잡기와 '점령군' 논란에 직면했다. 또 인수위 핵심에 교수 출신들이 대거 중용돼 새 정부 출범 준비가 '현실'보다는 '이상'에 치우치고 각종 회의가 탁상공론에 그쳤다는 비판들도 제기됐다.
정치권과 정부에서는 인수위가 3가지만 잘 해도 성공적이라고 입을 모으고 있다. 첫째가 새 정부의 모습을 결정할 조직개편이고 둘째가 정부를 이끌 국무총리와 장관 등 첫 조각(組閣) 이다. 인수위 파견을 경험했던 한 전직 관료는 "인수위의 기본적 역할은 내년 2월25일 대통령 취임식 직후부터 새 정부가 곧바로 일을 잘할 수 있게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17대 인수위에서는 정부 조직개편 관련법이 야당과 큰 갈등을 겪어 장관 인선안이 취임식 일주일 전 발표됐다. 이로 인해 인사청문회는 늦어지고 장관 후보자 3명이 중간에 낙마해 국정이 초반부터 파행을 빚었다. 청와대의 한 관계자는 "인사검증 등에 참여정부가 충분히 협조하지 않은 부분도 있지만 인수위 시절 너무 욕심을 낸 것도 화근이었다"고 회고하며 "박근혜 당선인이 인수위 구성과 인선, 활동 등에 신중한 모습을 보이는 것은 바람직해 보인다"고 말했다.
인수위는 이와 함께 정부의 기존 업무를 촘촘히 파악한 후 당선인의 대선공약 등을 조정∙반영해 새 정부의 국정방향과 과제들을 선정하면 '유종의 미'를 거둘 것이라는 조언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경제부처의 한 고위관계자는 "인수위가 중단 혹은 폐지할 정책과 신설할 정책에만 편중되지 말고 지속∙강화할 것과 수정해 보완할 정책들도 충분히 관심을 가졌으면 한다"고 말했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