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무역이라든지 특정한 산업을 지원하기 위해 정부가 운영해왔던 공기업은 대대적인 수술을 해야 할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정부 내의 대표적인 ‘개혁 전도사’ 전윤철 감사원장은 그 동안 개혁의 사각지대로 남아있었다고 할 수 있는 공기업 및 정부산하단체, 지방공기업에 대한 강도 높은 혁신을 예고했다. 전 원장은 지난 1997년 공정거래위원장을 맡은 이후 10년 가까이 장관급 이상 직위에 있으면서 정부 혁신에 앞장서왔다. 그런 그가 공기업 개혁으로 눈길을 돌리고 있는 것이다. 그는 또한 정치적 중립성 논란에도 불구하고 지방자치단체 감사에 이어 사학 감사를 단행하고있다. 기본원칙이 세워지면 눈치를 보지 않고 과감하게 업무를 추진하는 전 원장을 지난 14일 서울 삼청동 감사원장실에서 만나 주요현안에 대한 감사 방향을 들어봤다. -공기업의 개혁방향은 어떻게 설정하고 계십니까? ▦60년대에는 자원이 부족하고 시장규모가 작아서 국가주도의 개발전략을 쓰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이후 50년이란 세월이 흐르면서 민간부분이 상당히 높은 수준으로 올라왔습니다. 이제 공기업은 민간과 경쟁해야 되는 부분은 과감히 접고, 민간이 개척하지 못한 분야에 들어가 활로를 개척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이야깁니다. 금융공기업은 초창기에는 산업자금을 동원했던 곳입니다. 그런데 요즘 대기업쪽에서는 기업금융이 일어나질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거 스타일로 금융업을 운영하려고 하는데 이런 것은 바뀌어야 된다고 봅니다. 과거 무역이라든지 특별한 산업 쪽에 정부가 지원하기 위해 운영해왔던 공기업의 경우에는 대대적인 수술을 해야 할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사학감사가 국민적 관심을 모으고 있습니다.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요. ▦우리나라 사학이 우리 교육발전에 지대한 공을 세운 것이 사실입니다. 그런데 초ㆍ중ㆍ고 사립학교 재원에 대해서는 전체의 96.2%를 정부와 학부모가 부담하고 있습니다. 국민의 세금이 사학에 들어가고 있기 때문에 감사할 필요가 있죠. 아직 감사 초기단계라서 사학비리의 실태를 구체적으로 밝히긴 어렵지만 1~2월 예비조사 기간에 접수된 제보를 분석해보니 정부지원금의 횡령ㆍ특수관계인과 수의계약 및 리베이트 수수ㆍ교원채용 및 편입학 관련 비리가 주요 유형으로 드러났습니다. -감사원의 정치적 중립이 얼마나 지켜지고 있다고 보십니까? ▦감사원 감사를 공격하기 위한 수단으로 흔히 독립성 상실을 주장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지난해 유전게이트 감사나 행담도 감사를 보면 감사원과 검찰ㆍ법원이 동일한 결론을 내렸습니다. 지방자치단체 감사는 정치감사 논란을 피하기 위해 직원들이 밤을 새가며 작업한 끝에 2월 초에 결과를 발표한 것입니다. 감사원의 직무상 독립성이나 정치적 중립성은 충분히 지켜지고 있다고 판단합니다. -5ㆍ31 지방 선거를 앞두고 공직기강이 해이해지고 있다는 지적이 많습니다. 이에 대해 감사원에서 세우고 있는 대책이 있습니까? ▦지난해 말에 공직 감찰활동을 담당하는 특별조사국을 특별조사본부로 확대하면서 인원을 78명에서 97명으로 늘렸습니다. 이와 함께 과거 명절이나 연말연시 등 취약시기에 집중됐던 공직기강 점검활동을 상시 기동감찰 체제로 전환했습니다. 특히 비위가 많이 발생하는 교육ㆍ건축ㆍ공사ㆍ계약ㆍ경찰ㆍ소방ㆍ세무 등 7대 취약분야에 대해서는 연도별로 특정분야를 선정해 집중 점검할 계획이며 올해는 사학비리 등 교육분야의 문제점 개선에 중점을 두고 있습니다. -한국사회의 비전에 대한 개인적인 견해는 어떠한지요. ▦우리나라가 지금 중진국의 덫에 함몰돼있습니다. 1인당 국민소득 2만달러 이상의 선진국으로 진입하기 위해서 빨리 중진국의 덫에서 벗어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사회통합이 무엇보다도 절실합니다. 여기서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지금 50~60대에게는 ‘배고프니까 잘살아보자’는 것이 국민 통합의 원동력이었습니다. 그 이후 30대말이나 40대는 민주화운동이라는 꿈이 있었죠. 그러나 현재 20대말 30대초에게는 잘살아보자는 욕심도 없고, 민주화라고 하는 공동의 목표도 없어졌어요. 목적의식도 없이 괜한 불평만 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생각입니다. 젊은 세대들이 웬만한 서비스업이나 중소기업은 직장으로 보지도 않습니다. 양극화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첫째가 일자리 창출이고 그 다음이 재정 지원을 통한 소득 격차 보충입니다. 그런데 서비스업, 중소기업을 직장으로 생각하지 않는 것은 큰 문제입니다. -이해찬 전 총리의 사임 이후 총리 하마평이 자주 나오고있습니다. ▦오래 공직에 있다 보니 언론에 그렇게 나는 것 같은데요. 감사원장 직책이 과거와는 좀 달라졌습니다. 시스템 감사가 체계를 갖추면서 국정 전반을 관리ㆍ감독하는 일을 감사원에서 하고 있습니다. 감사원도 총리실 못지 않게 많은 일을 하고 있습니다. 이 자리를 내 인생의 마지막 자리로 알고 여기서 변화와 개혁을 추구할 것입니다. 감사원은 직무감찰권이 있기 때문에 충분히 개혁을 주도할 힘이 있습니다. 감사원장으로서 내년 11월 임기까지 우리의 국가 패러다임을 경쟁력있게 바꿔나가는데 전력을 다할 생각입니다. 田감사원장은 세정권서 장관급 이상 역임 '정통관료' 전윤철 감사원장은 지난 66년 행시4회로 관계에 입문, 구 경제기획원 기획관리실장을 거쳐 수산청장ㆍ공정거래위원장ㆍ기획예산처장관ㆍ대통령 비서실장ㆍ부총리 겸 재정경제부장관 등을 거친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전문관료다. 문민정부 시절인 97년 공정거래위원장을 시작으로 세 정권에 걸쳐 장관급 직위를 역임해 '관운(官運)'을 타고났다는 평가도 있다. 그러나 초창기부터 탄탄대로를 걸었던 것은 아니었다. 법제처에서 공직생활을 시작했으나 공정거래법 제정에 대한 전문가가 필요해 김학렬 전 부총리가 그를 경제기획원으로 발탁했다. 당시 행정직인 전 원장이 재경직으로 옮기기 위해서는 전직시험을 치러야 했으나 김 전 부총리가 강력히 주장해 재경직과 행정직의 구분이 몇 년간 없어졌다. 당시 사무관에 불과했던 그 때문에 정부의 인사시스템이 바뀐 셈이다. 하지만 그가 자리를 옮기고 4개월 만에 김 전 부총리가 세상을 떠났다. 이후 동료들보다 과장승진이 3~4년 이상 늦어지는 등 불운을 겪기도 했다. 그는 어렵게 학창시절을 보낸 것으로도 유명하다. 서울고 재학 당시 저녁에 명동에서 군밤장수를 하다가 가짜학생으로 몰리기도 했다. 전 원장을 가짜학생으로 몰았던 빵집 주인은 학생신분을 확인한 뒤 가정교사로 삼았다. 또 서울법대 재학시절 돈이 모자라 설렁탕 반 그릇을 주문했으나 식당에 있던 한 신사의 도움으로 곱빼기를 얻어먹었던 사연도 인터뷰에서 털어놓았다. 요즘 일주일에 세 번씩 원어민 강사와 함께 영어공부를 한다. "젊었을 때 외국 유학을 하지 못해 실력이 잘 늘지 않는다"는 하소연을 하면서도 자기개발을 멈추지 않고 있다. 직원들에게도 주말을 이용해 외국어 공부나 독서 등을 하도록 적극 권유하고 있다고 한다. 그가 '공직자의 귀감'으로 회자되는 이유가 다른 데 있는 것이 아니었다. 끊임없는 자기 혁신이다. ◇약력 ▦39년 전남 목포출생 ▦서울고ㆍ서울대 법학 ▦66년 행시 4회 ▦90년 경제기획원 물가정책국장 ▦94년 경제기획원 기획관리실장 ▦95년 수산청장 ▦97년 공정거래위원장 ▦2000년 기획예산처 장관 ▦2002년 대통령 비서실장 ▦2002년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 ▦2003년 제주대ㆍ목포초당대 석좌교수
비리등 사후적발 아닌 사전예방에 초점 맞춰 '시스템감사'는 전윤철 감사원장이 취임 직후 제시한 감사 패러다임으로 사후적발이 아닌 사전예방에 중점을 둔 것이 특징이다. 과거의 감사활동이 비리ㆍ예산낭비 적발 등 문제에 대한 사후처리에 그쳤다면 시스템감사는 상시 모니터링을 통해 문제를 발견하고 종합적인 개선대안까지 마련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감사원은 2004년부터 올해 2월까지 64건의 시스템감사를 통해 각종 제도를 개선했다. 지금도 '금융공기업 경영혁신 추진실태' 등 18건의 시스템감사가 진행 중이다. 단체수의계약제도 폐지, 환경ㆍ교통ㆍ인구ㆍ재해 등 4대 영향평가제도 통합, '지방자치단체 기금관리 기본법' 제정, 국유재산 관리시스템 개선 등이 대표적인 시스템 감사의 성과로 꼽힌다. 이 밖에도 감사원은 시스템감사를 통해 105건의 법령정비를 권고해 29건이 조치완료됐고, 242건의 훈령ㆍ예규의 개정을 촉구해 118건이 정비됐다. 시스템감사는 부처간ㆍ기관간 갈등을 해소하거나 예산의 중복투자를 방지하는 '정책조정자'의 역할도 하고 있다. 차세대 성장동력산업 육성을 둘러싼 부처간 주도권 다툼이 시스템감사를 통해 정리된 것이 대표적인 예다. 감사원은 앞으로 시스템감사를 '정책품질관리체계'로 발전시킬 계획이다. 이는 사후적발이라는 기존의 감사 개념을 완전히 벗어난 것으로 주요 핵심정책이나 사업에 대한 모니터링-시스템감사-개선조치를 모두 묶어 추적ㆍ관리하자는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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