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복되는 출제오류 파문 속에 대학 수학능력시험의 출제 시스템을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가운데 수능 출제의 기둥 역할을 하는 EBS 교재와 수능의 연계 정책부터 손질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18일 교육업계에 따르면 EBS 교재는 교과서가 아닌 문제집이어서 국가 검증과정에서 예외시되는 반면 국가시험인 수능에서의 출제 연계율은 70% 이상에 달한다. 이 때문에 이번 수능에서 드러난 EBS 교재에 따른 수능 출제오류 가능성은 처음부터 예고된 것이나 다름없다는 게 교육계의 지적이다.
실제 이번 수능에서 문제가 된 생명과학 8번, 영어 25번 등은 모두 EBS의 출제오류가 검증 없이 수능에 출제되면서 나타났다. 생명과학Ⅱ 8번은 대장균이 젖당을 포도당으로 분해할 수 있는 효소의 생성과정을 묻는 문제로 74%의 학생들이 'RNA중합효소는 조절유전자가 아닌 프로모터에 결합한다'고 본 EBS 수능교재 내용을 믿고 오답인 ②번을 택했다. 영어 25번 문제 역시 %와 %포인트를 구분 못한 EBS 교재의 오류가 출제에서도 그대로 이어져 "EBS 교재에서 두 개념이 구별되지 않고 쓰였으므로 복수 정답으로 처리하면 안된다"는 논리마저 힘을 얻고 있다.
올해 수능에서 EBS 교재와의 출제 연계율은 영역별로 70% 이상에 달했고 가장 쉬운 시험으로 치러진 영어영역에서는 75.6%를 기록했다. 수능에 출제된 EBS 교재 숫자만 해도 1~5교시에 모두 응시했다고 가정할 경우 문과생의 경우 19권, 이과생은 23권에 달한다. 영역별 선택과목을 모두 포함해 EBS가 발행한 교재 중 이번 수능에 '동원'된 숫자는 국어 10권, 수학 10권, 영어 6권, 사회·과학탐구 각 20권 등 모두 102권이다. 꼼꼼하고 정확한 검증작업을 기대하기에는 처음부터 역부족인 측면이 없지 않은 셈이다.
각 고교에서는 이같이 방대한 분량을 감안해 고3 과정 전체를 EBS 교재의 문제풀이에 치중하고 있다. EBS 교재가 사실상 고3 과정의 교과서 역할을 하고 있는 셈이다. 하지만 이들 교재는 교과서가 아니라는 이유로 국가 검인정 절차에서도 예외 처리되고 있다. 한 교과서 발행업체 관계자는 "방대한 과목 수 덕분에 일부 교과서 업체들은 한 해 검인증 검사료로만 10억원 이상을 소요한다"면서 "검증과정조차 제대로 밟지 않는 교재에 공신력과 우수한 출제 수준을 기대하기는 처음부터 무리일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를 반영하듯 EBS 교재는 지난 국정감사에서도 영어지문의 지적재산권 문제로 망신살을 샀다. 발행 출판물의 일부를 인용할 경우 저자에게 저작권료를 지불하는 것은 출판업계의 상식 중의 상식. 하지만 EBS는 저작권료조차 지불하지 않은 외국 교재를 교재 지문으로 사용했다. 이런 지문들은 국가시험인 수능에서도 그대로 게재됐다. 자칫 국제적인 망신을 살 수 있을 법한 오류가 EBS 교재의 연계과정에서 반복되고 있는 셈이다.
당초 사교육 방지와 수능 성적우수자 확대를 위해 도입된 EBS 출제 연계 방침은 이 같은 과정을 통해 시간이 갈수록 국가시험을 기형적으로 빠뜨리는 오류를 범하게 됐다. 객관적 증명이 힘든 '연계율 70%'를 달성하려면 똑같은 지문이 그대로 출제되는 사례가 불가피해 학교 현장에서는 학습법의 왜곡이 심각해지고 출제위원들 역시 혼란을 겪게 된다는 게 교육계의 지적이다.
일각에서는 이번 기회에 수능 출제와 관리 등 전반적인 수능 출제 시스템 자체를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현재 대입과 수능 정책은 교육부가 관할하지만 수능 출제는 한국교육평가원이 담당한다. 하지만 수능 출제기관인 한국교육평가원은 교육부가 아닌 국무총리실 산하기관이라 시험관리가 갈수록 엉망이 되는 한 배경이 되고 있다는 것이다. 한 교육계 관계자는 "근본적 대책 없이 이 같은 파문은 지속될 수밖에 없다"며 "ESB 교재에 대한 검증 강화와 수능 반영률 조정 등과 함께 출제 시스템 개선안이 뒤따라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