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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소모적 출자총액 논쟁

임영재 KDI 법경제팀장

최근 공정거래법 개정안에 대해 국회에서 논의가 시작됨에 따라 정부의 재벌정책에 대한 논쟁도 다시 일고 있다. 논쟁의 핵심은 출자총액제한제도와 재벌소속 금융계열사의 의결권행사 제한이다. 그런데 매우 불행하게도 이 논쟁은 경제 문제에 대한 이론적ㆍ실증적 효과를 규명하고자 하기보다는 상당히 소모적인 이념적 또는 정치적 색채를 띠고 있다. 출자규제에 논의를 국한해서 살펴보자. 반대 논리의 중요한 축은 출자총액제한제도가 대기업의 설비투자를 위축시킨다는 주장이다. 최근 경제가 어려운 현상의 원인 중 하나로 정부의 재벌에 대한 출자규제를 지목하면서 일반 국민들의 심정적 동조를 이끌어내고 있는 것 같아 보인다. 중요한 것은 이 주장이 실증적으로 타당한지 여부다. 대기업 투자위축 근거 안돼 KDI의 분석 결과 지난 98년부터 2003년까지 대기업 집단의 투자율과 피출자 증가율의 상관계수는 평균 0.064, 투자액과 피출자 증가액의 상관계수는 0.021로 매우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98년부터 2001년까지는 출자총액제한제도가 폐지됐던 기간인데 이 기간 중에도 출자가 직접적으로 투자를 증진시키는 관계에 있다는 것을 입증할 수 없었다. 특히 최근 설비투자 부진 요인은 주로 비상장 중소기업의 투자 부진 탓이라는 점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외환위기 이후 크게 침체됐던 상장기업들의 설비투자는 2003년에 증가세로 반전된 것으로 추정된다. 요약하자면 최근 우리나라 경제의 설비투자 부진의 원인은 출자총액제한제도에 있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대기업들의 경우 미래의 경제 환경에 대한 커다란 불확실성 때문에 설비투자라고 하는 ‘구속력 있는 경제행위(commitment)’하기를 주저하고 중소기업들의 경우 수익성 악화로 인해 여력 자체가 부족한 것이 근본 원인이다. 그렇다면 출자총액제한제도를 둘러싼 과열 논쟁을 우리는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우리나라 재벌그룹의 지배대주주는 소유권 측면에서 소수주주임에도 불구하고 의결권 측면에서 지배주주의 지위를 갖고 있다. 정확하게 표현하자면 지배 소수주주인 셈이다. 우리나라의 지배소수주주 체제는 광범위한 계열사간 출자에 의해 유지되고 있다. 과거 정부의 기업공개정책과 소유분산유도정책은 선진국의 독립기업 체제를 암묵적으로 상정한 것으로 결과적으로 원래 의도와는 다르게 계열사간 출자의 동원을 통한 소유분산을 초래했던 게 사실이다. 최근의 연구들은 이러한 지배소수주주 체제가 사회 전체적으로 비용과 비효율을 초래할 수 있고 따라서 어떠한 형태로든 그 사회적 비용을 줄이기 위한 정부의 정책이 필요함을 말해주고 있다. 이런 맥락에서 OECD도 2004년 발표한 기업지배구조 모범규준 개정안에서 기업집단 차원에서의 지배구조 원칙들을 새로 정비할 것을 권고하고 있다. 지배구조 원칙들 정비해야 우리나라 출자규제의 이론적 근거 역시 바로 지배소수주주 체제의 사회적 비용을 줄이는 데 있다. 공정거래법 개정안이 이러한 기본인식에서 출자총액제한제도의 합리적 개선을 위한 장치를 포함하고 있는 점은 긍정적으로 평가된다. 이 같은 건전성 규제는 통상 소수의 일탈적 행위 및 그 사회적 비용을 방지할 수 있다. 출자총액제한제도는 현재 적용제외 및 예외인정을 통해 기업의 경쟁력 강화, 성장잠재력 확충 등과 관련된 분야에서의 타회사 출자를 출자한도에 관계없이 허용하고 있다. 출자총액제한제도는 대기업의 투자활동에 대한 제약조건이 아니라는 얘기다. 2004년 4월 현재 18개 출자총액제한대상 기업집단의 경우 순자산의 25%인 출자한도 중 10.4%만 출자하고 있음은 이를 입증하는 대목이다. 출자규제를 둘러싼 논쟁은 실제로 소수의 재벌그룹이 건전성 규제를 무력화시키기 위해 다분히 정치적 의도로 주도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2001년에도 그랬던 적이 있다. 기업의 경쟁력을 약화시키는 것은 출자총액제도가 아니라 모든 것을 제도 탓으로 돌리려는 왜곡되고 모순된 시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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