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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터리] 스펙 쌓기 달인들

최원식 쌤소나이트 코리아 지사장


얼마 전 필자의 대학교 과 동기인 J교수에게서 다급한 전화가 왔다. 각 분야 졸업생 동문들을 초청해 '선배와의 만남'이라는 멘토링 강의를 열게 됐으니 강사로 참여해 달라는 요청이었다. 강의의 주제는 '직장에서 현명하게 살아남는 법'이었다.

후배들과 만나는 날, 설레는 마음으로 직장 생활을 견실하게 해 낼 수 있는 요점들을 뽑아 프레젠테이션 형식으로 준비해 후배들 앞에 섰다. 학생들의 눈높이에 맞게 '성실해야 한다, 팀플레이어가 되어야 한다, 내 것을 먼저 내놓아라, 눈치가 빨라야 살아남는다, 적을 만들지 마라' 등 다소 원론적인 내용으로 조언 같은 강의를 이어 나갔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분위기는 이상하게 흘러갔다. 대부분의 학생들이 필자를 응시하지 않고 있었고 다수는 별 관심 없는 심드렁한 표정으로 강의에 집중하지 않는 모습이 역력했다. 필자의 강의가 그렇게 재미가 없나 하는 난감함과 미안함에 사로잡혀 강의를 부랴부랴 끝내고 그들이 실제로 듣고 싶고, 하고 싶은 얘기들을 알고 싶어서 곧바로 질의응답 시간을 제안해 분위기를 전환했다.

억지로 옆구리를 찌르다시피 해 받은 질문에서 필자는 학생들이 왜 그토록 심드렁한 반응을 보였는지 어렴풋이 알 수 있었다. 후배들은 직장 생활을 잘하는 법보다 그 직장에 어떻게 들어갈 수 있는지, 좀 더 구체적으로는 어떤 스펙을 더 쌓아야 입사가 가능한지에 모든 관심이 집중돼 있었던 것이다. 들어갈 수 있을지 없을지 알 수 없는 직장에서 '어떻게' 살아남느냐는 그들에게 아직 관심 밖의 일이었다.



순간 지난 20여년간의 인생을 스펙 쌓기에 올인해 온 그들의 고뇌에 연민이 느껴졌다. 그들의 지난 인생에는 '우선 한번 해 볼까?' 하는 의욕과 섣부른 치기를 부릴 틈조차 허용되지 않았다. 원하는 직장이라는 곳에 들어가기 위해 꼭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경험과 기술만을 선별해 마치 젠가(Jenga)를 쌓아 올리듯 집중해 왔던 것이다.

묘한 낭패감 속에서 한 학생의 마지막 질문이 이어졌다. "선배님, 직장 생활 잘하려면 무슨 스펙을 더 쌓아야 하나요?" 맙소사! 전쟁 같은 취업 시장에서 어떻게 살아남느냐가 우선인 그들에게 지혜로운 사회 생활을 위한 팁은 영양가 있는 조언이 아닌 그저 공염불일 뿐이었다.

시대의 요구에 부합하지 못한 주제로 학생들의 구미를 당기지 못한 강연을 선보인 필자를 탓해야 할지, 으레 그 나잇대에 꿈꿔야 할 부푼 희망과 꿈 없이 당장의 결과물을 얻는 데 함몰된 이들의 모자란 도전 정신을 아쉬워해야 할지 고민이 많다. 우선은 이들을 '스펙 쌓기의 달인들'로 내몬 기성세대들의 일차적 반성이 뒤따라야 한다는 데 조금 더 마음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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