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프로스가 국제채권단과 구제금융 조건에 극적으로 합의해 일단 디폴트(채무불이행) 및 유로존 탈퇴는 면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이지만 자금도피처로서의 위상이 붕괴될 위기에 처하며 향후 경제회복에 어려움을 겪을 것으로 전망된다.
24일 가디언에 따르면 금융전문가들 사이에서 키프로스가 이미 자금도피처로서의 위상을 잃었다는 분석이 쏟아지고 있다. 1억유로 규모의 펀드를 운용하는 페트로 발코는 "키프로스는 금융산업에서 가장 중요한 신뢰를 상실했다"며 "고객의 99%가 (키프로스에서) 돈을 빼낼 방법을 찾고 있다"고 말했다.
설상가상으로 라트비아ㆍ스위스ㆍ독일 등의 은행들은 키프로스에서 나오는 자금을 끌어가기 위해 현지에 직원을 급파하고 한 시간 내에 계좌를 만들어주겠다고 제안하는 등 키프로스 뱅크런(대규모 예금이탈) 현상을 부채질하고 있다.
가디언에 따르면 키프로스 은행 전체 예금액(700억유로)의 절반가량은 러시아인 소유이며 나머지 중 상당수도 영국 등 외국인 자금이다. 또한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국내총생산(GDP)의 절반이 금융 부문에서 창출된다. 이번 사태로 실제 외국인 자금이 썰물처럼 빠져나가 금융 시스템이 붕괴할 경우 키프로스 경제가 회생하는 데는 상당한 시일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이와 관련, 키프로스에서 해운업을 하는 러시아인 표도르 미킨은 "돈이 떠나면 식당 고객, 자동차와 부동산 구매자도 모두 떠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이는 키프로스인들의 생계수단이 사라진다는 뜻"이라고 평가했다. FT도 "수많은 외국인 자금을 운용하던 회계사와 변호사ㆍ비서들의 고용이 흔들릴 것"이라고 진단했다.
이에 올해 키프로스가 더 깊은 경기침체를 겪을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헤지펀드 자문사 엑조틱스의 가브리엘 스테른은 "올해 키프로스의 경제성장률이 -10%를 기록하고 내년에도 -8%에 머물 것"이라고 내다봤다. 키프로스의 올해 공식 경제성장률 전망치는 -3.5%다. WSJ는 키프로스의 실직자가 급증하고 기업파산이 늘며 세수부족 현상이 심화될 것이라고 전했으며 가디언도 회피자금으로 성장하던 키프로스식 경제모델이 끝장났다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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