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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나영 기자의 1일1식(識)] <83> '유행어 같은' 세 가지 ① 플랫폼


요즘 미디어를 들여다보면 유난히 자주 등장하는 단어가 셋 있습니다. ‘플랫폼’과 ‘디자인’ 그리고 ‘편집’이라는 개념입니다. 재밌게도 이들 모두 IT 가 우리 생활의 중요한 요소가 되면서 더욱 강조되고 있습니다. 플랫폼, 디자인, 편집 모두 창조경제, 즉 아이디어와 새로운 사업에 대한 접근을 바탕으로 혁신적으로 시장을 창출해 내는 과정에 수반되는 원동력인 것처럼 이야기되고 있는 현실입니다. 그런데 자세히 들여다보면 우리가 세 가지 단어를 너무 남발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우선 IT 업계에서 자주 통용되는 플랫폼은 원래 소프트웨어나 제품을 개발할 때 부품들을 합쳐놓은 틀거리를 의미합니다. 기차역의 승차 공간을 뜻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언제 어디나 통하는 관문, 또는 스스로는 가치를 만들어 내지 않지만 다양한 것들과의 연결을 통해 큰 효과를 만들어내는 소재로 인식되고 있죠. 경제학자들은 플랫폼의 성립 조건을 ‘나이트클럽 모델’로 이야기합니다. 일부 고객들은 마음에 드는 이성을 만나기 위해 나이트클럽에서 비싼 돈을 지불합니다. 반면 또 다른 고객들은 싼 가격 또는 거의 값을 지불하지 않습니다. 똑같은 공간에 입장하는데도 불구하고 한쪽은 높은 가격을 다른 한쪽은 낮은 가격을 내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나이트클럽 사업자는 다른 고객으로 하여금 특정 고객의 상품 구매 비용을 부담하도록 한 것이죠. 자기가 중간자로서의 역할을 차지함으로써 생기는 권리를 활용한 것입니다. IT업계에서는 네이버 같은 포털이 대표적인 플랫폼입니다. 대다수 사용자들은 네이버를 통해 물건을 사지 않는 한 거의 돈을 지불하지 않고 서비스를 활용합니다. 그렇지만 이용자들이 돈을 전혀 안 낸 게 아닙니다. 단지 네이버를 통해 광고를 하는 광고주들이 대신 비용을 부담한 것이죠. 이를 가리켜 ‘양면 시장’(Two side market)이라고 경제학자들은 말합니다.

그런데 전문가들이 종종 미디어에 기고하는 글이나 보고서들을 보면 플랫폼은 마치 모든 상황에 적용될 수 있는 단어인 것처럼 부풀려지고 있습니다. ‘결제 플랫폼’, ‘광고 플랫폼’ 등 새로운 형태의 시스템과 공간을 갖고 있는 비즈니스는 모두 플랫폼적 가치를 지니는 것처럼 표현되곤 합니다. 그들의 전문가적 소견으로 가장 바람직한 IT 사업자는 다른 기업들의 효용과 가치를 함께 담보할 수 있어야 하는 기업을 뜻하는 것 같습니다. 페이스북, 구글을 비롯한 많은 기업들은 처음에는 남의 콘텐츠를 자신의 서비스 안에 내재화하거나 그 링크를 소개함으로써 플랫폼의 역할을 합니다. 그러나 정작 스스로 사업을 통해 돈을 벌 수 있다는 판단이 들면 사업체를 인수하거나 신사업 형태로 비즈니스를 시작함으로써 제국의 크기를 키웁니다. 그런데 미디어나 전문가들은 이런 조치가 ‘플랫폼 역량 강화’를 위한 조치라며 추켜세우기에 바쁩니다. 인수합병을 통해 시장에서 거래할 수 있는 상품을 내부화하는 것과 남의 상품을 중개하는 것은 엄연히 다른데 말이죠. 미래지향적인 비즈니스 모델과 비즈니스가 갖추어야 할 덕목에 대한 정의는 분명 구분되어야 합니다.



유난히 우리 업계와 사회는 ‘쏠림 현상’이 심합니다. 말 그대로 특정 분야나 상황에 대한 구체적인 정보가 없을 때 남이나 미디어에 기대어 의사결정을 하는 경우가 많은 것입니다. 진정한 창조경제 모델이 정착되기 위해 필요한 것은 새롭고 독창적인 생각을 하는 것뿐만 아니라 기본과 원리에 충실한 논의를 전개하는 일입니다. 미디어가 그들이 뱉어낸 말들만 그대로 전달하는데 치중한다면 미디어는 ‘현실과 먼 공허한 단어들만을 유통시키는 플랫폼’으로 변질되지 않을까요.

/iluvny23@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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