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로존(유로화 사용 17개국) 재정위기 국가로 꼽히는 스페인 역시 지방자치단체의 재정 파탄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지자체의 재정 부실이 은행권과 중앙정부의 재정 건전성에까지 타격을 주자 스페인 정부가 지난달 25일 1,000억유로 규모의 은행권 구제금융을 신청한 데 이어 추가로 전면적인 구제금융을 신청할 것이란 전망도 나오고 있다.
스페인 지자체들이 파산 위기에 몰린 이유는 지난 1990년대 지방선거 공약 경쟁으로 무상의료ㆍ교육을 시행하고 복지 지출에 나섰기 때문이다. 또 지역에 기반한 지방공기업과 저축은행들을 중심으로 공항ㆍ철도 등 선심성 사회간접자본(SOC) 사업을 무분별하게 시행하면서 재정 부실이라는 역풍을 맞았다.
대표적인 사례가 발렌시아주다. 발렌시아주가 지난 1998년 막대한 비용을 들여 문을 연 과학공원은 아직 6억유로의 부채를 안고 있으며, 이자 등 부대비용을 포함하면 앞으로 7억유로가 더 들어갈 전망이다. 1억5,000만유로를 투입해 지난해 3월 완공한 신공항에는 아직 비행기 한대도 이착륙하지 않고 있다. 이 같은 무분별한 개발 프로젝트로 인해 발렌시아주의 지역 내 총생산 대비 부채비율은 2007년 11%에서 지난해 20%까지 치솟았다.
스페인 경제의 20%를 차지하는 카탈루냐 주정부도 사정이 어렵기는 마찬가지다. 카탈루냐주는 올해 돌아오는 지방채 만기를 막지 못해 130억유로에 달하는 부채 차환을 지원해달라고 중앙정부에 요청했다. 주정부가 발행한 2013년 만기 채권 수익률은 한때 위험수준인 8%를 넘어서면서 파산 우려를 고조시켰다.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카탈루냐주를 비롯해 연내 차환해야 할 스페인 지방정부 차환 규모는 총 300억유로에 달한다.
일단 지난 13일 스페인 정부가 지역경제 재건을 위한 180억유로 규모의 지방정부 지원기금 운영 방안을 내놓음에 따라 자금난을 겪고 있는 지자체들의 숨통은 다소 트일 전망이다. 기금은 복권사업 기금과 정부 출자로 구성되며 지방정부에 긴축 프로그램 이행을 조건으로 지원된다. 스페인 정부는 지방정부 지원기금이 자본 조달이 막힌 지방정부의 채무불이행 사태를 막아 스페인 경제의 신뢰도를 높일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하지만 이 같은 상황에서도 스페인 지자체들은 재정적자 감축을 위한 노력을 게을리하고 있어 사태를 낙관할 수는 없는 실정이다. 유럽연합(EU) 규정에 따라 공공부문의 재정적자를 줄여야 하기 위해서는 지자체의 긴축재정이 필수이지만 지난해 17개 자치정부 중 8곳이 중앙정부의 긴축 요구를 묵살했고 부채는 2010년보다 오히려 증가했다. 보건과 교육 등에 대한 예산권한을 가지고 있는 지방정부의 지출은 전체 공공지출에서 약 37%를 차지한다. 스페인 정부는 17개 지방정부에 대해 재정적자를 지역 내 총생산의 1.5% 이내로 줄일 것을 요구하고 있지만 지켜질지는 미지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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