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6 군사혁명으로 권력을 장악한 박정희 전 대통령에게 경제개발은 지상명령이나 다름없었다. 국민과 나라 전체의 경제적 질곡을 벗어나는 것이 무엇보다 급선무였지만 정권의 정통성 확보를 위해서도 절박한 과제였다.
박 전 대통령은 소련권 사회주의 국가들이 정부 주도로 급속한 공업화를 실현했던 경험에서 힌트를 얻어 가장 먼저 경제기획원(EPB)을 창설한다. 여기서 전심전력을 기울인 것이 제1차 경제개발5개년계획이었다. 그러나 수입대체산업 육성과 자립경제에 초점을 맞춘 1차 개발계획은 뜻대로 진척되지 않았다. 꿈만 있었을 뿐 그것을 실현할 어떤 구체적 수단도 찾아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경제기획원 출범 초기는 그래서 사람 바꾸기의 연속이었다. 초대 장관 김유택을 시작으로 송요찬, 김현철, 다시 김유택, 유창순, 원용석, 7대에 다시 김유택이 삼세번으로 들어섰으나 여전히 터널 끝은 보이지 않았다. 모두 평균 재임기간이 5개월에 지나지 않았다.
대통령으로서도 당혹스러울 정도였다. 이 사람을 들여도 안되고 저 사람으로 바꿔도 안되기는 마찬가지였다. 이렇듯 박 전 대통령도 처음부터 경제 운용에 능력을 발휘한 것이 아니다. 다행히 반전(反轉)의 열쇠를 쥐게 된 것은 수출주도 경제정책으로의 전환 이후부터였다. 박 전 대통령은 이때부터 경제정책 운용에 자신감을 갖기 시작하고 그 후 각 부처 주무장관들은 대통령의 강력한 신임과 오랜 재임 기간을 통해 자신의 능력을 펼치기 시작한다. 제2차 경제개발5개년계획 이후 대부분의 기획원 장관 임기가 3년 이상을 기록한 것은 이런 배경에서다.
그럼 박정희 이후 우리나라 경제장관의 평균 임기는 얼마나 될까. 눈뜨고 볼 수 없을 정도다. 전두환 정부 1년, 노태우 1.3년, 김영삼 0.7년, 김대중 1년, 노무현 1.3년, 이명박 정부가 겨우 1.7년이다. 경제장관들의 영이 서지를 않고 공무원들은 끊임없이 줄서기와 복지부동을 반복할 뿐이라는 이야기가 나오는 것도 당연한 노릇이다.
툭하면 국정쇄신이라는 이름으로 사람 바꾸기에만 열중하는 한국의 정치 상황은 아무리 봐도 정상이 아니다. 장관직이 소모품인 것은 나라를 위해서도 바람직한 일이 아니다. 한 번 임명된 장관은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대통령과 임기를 같이하는 것이 마땅하다.
요즘 들어 국내 언론에서 또다시 쇄신 운운하며 개각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그런데 이유가 분명하지 않다. '정윤회 문건' 파동으로 한동안 시끄럽더니 그것이 허위로 밝혀지자 이제는 누가 만든 여론인지 그 여론(?)이 원하니까 개각하라는 식이다.
또다시 국정쇄신을 부르짖는 사람들의 망각 증세가 꽤나 놀랄 만하다. 벌써 잊었는지 모르겠으나 지난해 6월에도 언론은 국정쇄신을 위한 개각이 절실하다고 목청을 높이고 있었다. 겨우 6개월 전 아닌가. 대한민국 정부는 이처럼 국정쇄신이라는 이름 아래 써레질로 각료를 끌어모으고 추풍낙엽처럼 흩어지기를 반복한다. 쇄신의 실체는 없이 오로지 구호만 난무한다.
박근혜 대통령이 또다시 개각을 한다면 이유는 두 가지다. 박 전 대통령 집권 초기처럼 아직까지도 경제 운용의 궤도를 찾지 못해 방황하고 있거나, 그게 아니라면 단지 매스컴의 흐름에 영합하기 위해서다. 만에 하나 두 번째 이유라면 박 대통령은 삼류 민주주의 시대에 흔해 빠진 포퓰리스트 정치인이었다는 역사적 평가를 면키 어려울 것이다.
박 대통령이 무릎 꿇어야 할 대상은 국리민복(國利民福)이지 언론이 아니다. 언론에 잘 보인다고 훌륭한 지도자가 되는 것이 아니다. 더군다나 최근의 우리 언론은 팩트(사실)보다 선동(煽動)에 더 맛을 들이고 있지 않은가.
/이신우 논설실장 shinwoo@sed.co.kr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