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혁세(57) 전 금융감독원장이 한국 경제에 대한 진단과 고민을 담아 책으로 펴냈다. 행정고시 23회 출신인 권 전 원장은 재무부(현 기획재정부)와 금융위원회 등에서 33년간 공직에 몸을 담았다. 이 같은 경험을 바탕으로 그는 먹구름이 드리워진 한국 경제에 대한 진단과 갖가지 제언을 건넨다.
서두에서 그는'경제 권력의 이동'을 언급한다. "요즘 돌아가는 상황을 보면 정부가 발표하는 각종 대책의 입법 성공 확률은 갈수록 낮아지는 반면 국회의원이 주도하는 입법의 성공 확률은 높아지는 정반대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고 꼬집는다. 이제는 정부가 여야 정치권과 사전 교감 없이 섣불리 대책을 발표했다가는 국회 관문을 통과하기가 쉽지 않고 이로 인해 정부의 신뢰만 훼손될 가능성이 커졌다는 것이다.
이 같은'경제 권력의 이동'을 놓고 권 전 원장이 가장 우려를 표하는 부분은"날로 비대해지는 국회의 권한에 비해 국회 입법 활동을 주도하는 국회의원이나 보좌진의 전문성이 급변하는 세상의 흐름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는"이해관계 집단의 다양한 견해를 균형 있게 수렴해 조정하기보다 목소리가 큰 일방의 주장에 휘둘리는 사례도 적지 않다"며 "경제 실패의 책임 소재도 분명히 따져 볼 필요가 있다"고 쓴 소리를 건넸다.
정부의 세금 정책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그는"증세 없는 복지는 없다"고 단언하면서"무상복지라는 달콤한 이름으로 국민에게 무임승차 의식을 조장하거나 허황된 환상을 심어줘선 안 된다"고 말했다. 세수 부족 문제에 대해서는"지하경제 양성화도 필요하지만 노출된 세원에 대한 과세 정상화에도 정책적인 변화가 필요하다"면서 주택 임대사업자 과세 강화, 상업용 빌딩 임대소득 과세, 도심 빌딩의 과표 재점검 등을 주문했다.
금융계 전반에 대한 고언도 덧붙였다. 권 전 원장은"왜 우리나라에는 삼성전자 같은 세계적인 금융회사가 없느냐는 질문을 많이 받는다"며"심하게 말하면 금융부문이 국가경쟁력을 갉아먹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금융산업이 지금까지 제조업 위주의 수출주도형 경제성장을 뒷받침한 탓에 산업으로 정상적인 발전을 하지 못했다"며 "고도의 금융기법과 국제적 역량을 갖춘 인재 양성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한국경제 위기를 기회로 만들기 위한 정책 제언도 잊지 않았다."생각이 바뀌면 미래가 바뀐다"고 강조한 권 전 원장은 기부 문화 정립에서 해답을 찾기도 했다. 그는"기부는 비단 부자들의 전유물이 아니다"며"국민들이 일상생활에서도'끝전기부'(1,000원 미만의 끝전을 모아 하는 기부)와 같은 소액 기부를 즐겁게 할 수 있도록 현행 (기부금에 대한) 소득공제 혜택을 세액공제로 전환하는 방법도 고려해 볼 만하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한국은 역동성이 넘치고 정이 많은 사회다. 우리 사회의 이 같은 장점을 활용한다면 기부가 사회 통합을 저해하고 있는 양극화와 계층간 갈등을 해소하는 데 제2의 예산으로서 크게 기여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1만 5,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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