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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경제소사/8월23일] 통곡의 벽


1929년 8월23일 예루살렘 구시가지. 통곡의 벽 근처를 돌던 유대인 시위대를 향해 아랍인들이 돌을 던졌다. 충돌은 팔레스타인 전역으로 퍼졌다. 일주일 만에 유대인 133명이 죽고 300여명이 다쳤다. 아랍인도 87명이 살해되고 부상자 100여명이 생겼다. 영국의 위임통치가 시작된 1917년 이래 대규모 유혈사태는 처음. 1921년 5월 소요에서 양측이 낸 수십명의 희생자도 영국 주둔군의 과잉진압 과정에서 발생했을 뿐, 아랍 토박이와 유대인은 비교적 사이 좋게 지내던 터였다. 평화가 깨진 발단은 통곡의 벽 개축 논란. 통곡의 벽에 남녀를 구분하는 벽을 세우려는 이슬람 측의 개축공사를 성지 훼손이라며 반발하는 유대인들을 아랍인들이 찍어 누른 게 유혈충돌로 번졌다. 아랍인들의 경제적 피해의식도 평화적 동거를 일시에 무너뜨렸다. 조상의 땅에 이스라엘 국가를 건설하겠다는 시오니즘 운동을 타고 팔레스타인에 쏟아져 들어온 유대인들이 경제를 잠식해나가자 경계심리가 피를 불렀다. 1920년부터 1935년까지 팔레스타인에 유입된 유대인 돈은 약 9,000만파운드. 같은 기간 중 영국 총독부 예산의 3배에 이르는 금액이다. 유대 자금 덕분에 땅 값이 올라 아랍인 지주들은 돈방석에 앉았지만 계층분화와 빈부격차 심화에 대한 민중의 불만이 쌓여 유대인에게 집중됐다. 오락가락했던 영국의 중동정책과 서구화한 이질적 유대 문화 유입, 아랍 세계의 내부모순이 유혈극을 잉태한 셈이다. 77년 전의 피바람은 지금도 여전하다. 피해자와 가해자가 끝없이 바뀌며 갈수록 증오만 커지는 구조다. 경제적 손실도 막대하다. 이스라엘의 최근 레바논 침공에서만 51억달러가 소모되고 어린아이를 포함해 1,000여명이 죽어나갔다. 신이 통곡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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