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죽거리 잔혹사라는 영화가 있었다. 30년 전쯤의 고등학교 생활을 그린 영화인데 개봉 당시 극장에서 보면서 정말 저런 때가 있었나 싶을 정도로 격세지감을 느낀 영화였다. 사랑의 매로 포장된 교사의 폭력, 명예와 우정을 지킨다는 명분의 학생들 패싸움이 횡행하던 시절이다. 하기는 버스에서 담배 피우고 음주운전이 다반사이고 공중질서가 엉망이던 때이다. 불과 얼마 전의 일들인데도 그 사이 사회의 가치와 문화가 많이 바뀌어 지금은 상상하기조차 어려운 잔혹사로 비치는 것이다. 그만큼 세상이 빨리 바뀌고 있기 때문에 나타난 현상일 것이다.
시대변화에 뒤처진 건설업 관례
대형 건설업체들이 담합이라는 잘못을 저질러 사방에서 집중포화의 대상이 되고 있다. 법을 어겼으니 처벌을 받는 것은 당연하다고 할 수 있지만 1조원에 달하는 과징금에 영업정지·손해배상·형사소송에 시달리는 건설업체들을 보면 일면 딱해 보이는 것도 사실이다. 지금의 기준으로 보면 말죽거리 잔혹사이지만 과거에는 산업의 이익을 위해서, 또 근자에는 출혈경쟁을 피하기 위해 소위 '단합'을 해온 측면이 있다. 당시의 산업 풍토와 문화, 정부의 정책과 제도가 어우러진 결과가 담합으로 나타났다. 상대적으로 덜 투명한 건설산업의 특징상 시대 변화를 알아채지 못하고 타 산업보다 더 오래 그릇된 관례를 따르다가 된통 당하는 꼴이다.
인사청문회를 보면서 느끼는 감정과 비슷하다. 당시에는 주위에서 많이들 그러했으니 별다른 나쁜 의도 없이 다운계약서를 쓰고 위장전입을 했으며 자기표절을 했을 것이다. 인사청문회도 없을 때이고 가치 기준도 다를 때의 일인데 어느 날 느닷없이 공개적인 자리에서 공직자의 자격이 있느니 없느니 하면 누가 자신 있게 공직에 나서겠는가. 더 심각한 상황은 잘 달리는 선수를 뽑기보다 운동복 깨끗한 사람을 뽑게 돼 국가적으로 큰 손해를 보는 것이다. 운동능력만 중시하던 시절이 있었지만 일정 시점 이후부터는 깨끗한 운동복도 채점기준으로 삼겠다는 식의 변화가 있어야 할 것이다.
건설에서도 마찬가지다. 건설산업의 무죄를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정황이 바뀌었으니 정상참작의 여지를 하소연하는 것이다. 또 잘못한 것이 있겠지만 지난 경제발전 과정에서의 공로를 생각해서 처벌을 경감해주자는 것이다. 건설산업이 이룩한 고속도로·철도·다목적댐·항만·공항과 수많은 산업단지는 지난 시절 한국 경제가 이룩한 기적의 토대가 됐다. 오일 파동 때에는 해외 건설이 외화의 젖줄 역할을 하며 경제위기 극복에 한몫했다.
격려의 채찍질로 발전적 해법 찾아야
지난 50년의 공로를 생각해서 빠른 시대의 변화에 적응하지 못한 아둔함을 질책하되 업체를 죽이기보다는 더 잘 뛰도록 격려의 채찍질이 필요하다. 미래를 향한 발전적인 해법을 찾아봤으면 한다. 건설업계는 과거의 관행에서 벗어나 경쟁력을 배양하고 정부는 일괄조사 및 처분, 입낙찰제도 개선을 통해 건설산업의 구조적 전환을 모색해야 할 것이다. 최근 입찰 담합에 대한 정부 대책이 발표됐다. 아쉬운 부분이 없지 않지만 깨끗하고 능력 있는 업체가 입찰에 성공하는 풍토를 정착시키기 위해 건설업계와 정부가 함께 노력하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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