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녹색성장을 국가적 어젠다로 설정한 지 2년여. 실상 '녹색'은 현 정부 정책의 처음이자 끝이라 할 수 있다. 특히 에너지 정책은 녹색성장을 이루는 수레바퀴라 할 수 있다. 에너지 정책이 단순히 절약과 생산증대를 넘어 태양이나 바람ㆍ파도 등 환경오염이 없는 신재생원을 기반으로 한 친환경 시대로 빠르게 접어들고 있는 탓이다. 이태용(56∙사진) 에너지관리공단 이사장. 그는 국내 에너지 산업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만들어나가는 선두에 서 있다. 굳이 부연한다면 녹색성장과 에너지 절약의 전도사 역할을 한다고 할까. 서울경제신문과의 인터뷰 자리에 선 이 이사장의 발언 곳곳에는 다소 무거운 그의 역할에 대한 책임이 가득 묻어나 있었다. 탄소세 도입 태양광 등 투자 늘려
청정에너지의 시장경쟁력 키워나가야 온실가스 목표관리제 단계적 확대 시행
에너지 취약 계층에 바우처제 고려 ■ 에너지 정책의 신 패러다임 이 이사장이 가장 먼저 꺼낸 말은 역시 에너지 정책의 신패러다임이다. 그는 우선 "저탄소 시대에는 화석연료 사용에 따른 환경오염이나 탄소배출 같은 외부 효과를 비용에 반영한 에너지 가격 정책이 필요하다"며 정책의 방향 전환이 시급함을 강조했다. "우리 사회와 산업구조가 녹색 중심으로 하루라도 빨리 변모하기 위해서는 전기요금 등 에너지 가격이 '진정한 비용(True cost)'을 반영하는 메커니즘을 서둘러 구축해야 합니다." 희소한 에너지 자원의 절약과 석유나 석탄을 활용한 전력생산으로 발생되는 환경오염을 줄이기 위해서는 화석연료를 사용하는 전기 등의 가격 현실화가 필요하다는 이야기다. 당위론만 따지고 본다면 언뜻 당연한 것처럼 보이지만 쉽지 않은 숙제라는 점이 그의 목소리에서 묻어났다. 하지만 "중장기적으로 탄소세와 같은 환경∙에너지세를 도입해 화석연료보다 청정 에너지 생산이 더 경쟁력 있는 시장여건을 만들어주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대목에서는 그의 뚜렷한 소신이 다시 한번 드러났다. 이 이사장은 특히 "기존의 화석연료에 대한 보조금은 단계적으로 철폐해나가야 한다"는 정책적 지향점도 나타냈다. 이는 전기요금에 탄소세 등을 부과해 가격을 현실화하고 이 재원을 신재생에너지 산업 등에 투입함으로써 국가 전체의 에너지 패러다임을 '저탄소 친환경'으로 바꿔나가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전기나 가스 등의 에너지 가격이 휴대폰 등 통신요금보다 더 싸다는 점은 다시 한번 곱씹어볼만합니다. 어느날 갑자기 전기요금을 인상하는 것은 온당치 않지만 어느 정도 예고 등을 통해 단계적인 가격인상 등이 필요한 시점입니다." 저탄소 시대로 가기 위한 에너지 사용에 대한 그의 '가격론'은 여기에 그치지 않고 시간이나 시기별 차별화로도 이어졌다. "예전과 달리 요즘은 다양한 전열기를 통한 난방수요가 크게 늘면서 에너지 사용이 여름철보다 겨울철에 더 많아졌어요. 에너지 절약을 위해 특정 시간이나 시기별로 가격대를 차별화할 수 있는 방안도 모색할 때가 됐습니다." 저소득층 등 사회 소외계층에 대한 에너지 복지에 대해 그는 "에너지바우처와 같은 별도의 소득지원 제도를 통해 에너지 취약계층에 대한 복지적 측면을 고려해나가는 것이 합당하다"며 "정부가 현재 에너지 복지법을 고민 중"이라고 설명했다. 에너지바우처란 유류비와 전기∙가스 요금, 난방비 등 에너지를 소비할 때 드는 비용의 일부를 정부가 직접 보조하는 방식을 말한다. ■ 녹색 패러다임 변화와 기업 이 이사장은 정부가 녹색성장 비전을 공식 발표한 지난 2008년 8월15일보다 한 달가량 먼저 에너지관리공단 이사장에 부임했다. 그만큼 국내 녹색산업의 성장을 위한 그의 역할은 막중할 수밖에 없다. "2년 전에 비해 녹색산업의 틀은 엄청나게 많이 변했어요. 이제는 녹색산업이 본격적인 성장단계로 진입하는 구간에 다다랐습니다." 실제로 태양광과 풍력을 필두로 한 국내 신재생에너지 산업은 이제 각각 '제2의 반도체' '제2의 조선산업'으로 불리며 핵심 수출산업으로 빠르게 부각되고 있다. 특히 그는 "분명히 앞으로는 저탄소 경제시대로 갈 수밖에 없고 이는 곧 경제구조와 국민의 생활습관을 바꾸는 것과 직결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를 위해 정부가 저탄소녹색성장기본법을 제정하고 녹색성장 5개년 계획 등을 세운 것에 대해 높이 평가했다. 일관된 목표와 방향을 갖고 체계적으로 녹색성장을 추진할 수 있는 토대를 만든 것은 전세계적으로도 그 선례를 찾아보기 힘들다는 것이다. 이 이사장은 녹색산업 시대에 맞부딪힐 수 있는 기업들의 부담을 말하면서 기업의 적극적인 도전을 얘기했다. "역사적으로 산업구조가 변화하는 과정에서는 언제나 어느 정도의 리스크와 도전은 필요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럴 때일수록 기업들이 기업가 정신을 통해 '창의적 파괴'에 나설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 정부가 지난해 말 오는 2020년 개도국 권고치의 최고 수준인 전망치 대비 30%의 온실가스를 감축하는 도전적인 목표를 세운 데 따른 기업들의 부담을 염두에 둔 것이다. 내년부터 도입되는 산업 부문의 '온실가스 및 에너지 목표관리제' 등도 기업들로서는 적지 않은 부담이다. "정부가 목표를 정한 만큼 기술개발이나 인력양성 등과 관련해 지원도 많이 할 수밖에 없습니다. 특히 일부 대기업들의 경우 녹색산업 시대로 확실히 갈 것인가에 대해 의구심을 가질 수 있지만 '분명히 갈 것'이라는 믿음을 가져도 됩니다." 에너지관리공단은 올해 에너지 절약을 위해 서비스업종을 중심으로 기업들과 적정 냉난방 온도를 위한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 이와 관련한 그간의 평가에 대해 그는 "시행 초기에도 불구하고 큰 무리 없이 진행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며 "백화점이나 병원 등 대형 업체들은 되레 전기요금에 대한 비용을 줄일 수 있어 표정관리를 할 정도고 국민들 역시 이 같은 변화에 상당히 빠르게 적응해가고 있는 것 같다"고 긍정적인 평가를 내렸다. ■ 녹색성장과 대-중기 동반성장 국가적으로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동반성장이 강조되는 만큼 에너지 분야에 있어서도 상생의 전략은 펼쳐지고 있다. 대기업은 온실가스∙에너지 목표관리를 내년부터 의무적으로 실시할 예정이고 향후 자발적인 등록제도는 중소사업장을 대상으로 개편해 추진된다. 따라서 대기업이 등록제도에 참여할 수 있는 중소기업을 발굴해 인력∙자금∙기술을 지원하면 중소기업은 연차별로 발생된 감축 크레디트를 대기업에 이전하는 방식이 추진된다. "그린 크레디트 제도는 내년부터 중소기업의 감축량을 대기업의 목표달성 일부로 인정되도록 하는 것입니다. 올해 서부발전∙삼성전자와 협력해 중소기업 10개소를 대상으로 시범사업을 시작했고 앞으로 사업 확대를 위해 필요한 지원체계도 마련할 예정입니다." 정부는 화석연료를 신재생에너지로 대체하기 위해 태양광과 풍력을 중심으로 새로운 에너지산업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상황. 이와 관련해 그는 "신재생에너지 산업은 '제2의 벤처붐'으로 불릴 만큼 정부의 적극적인 인프라 구축과 지원에 힘입어 본격적인 성장단계에 진입하고 있다"며 "하지만 앞으로 '양'보다는 '질' 위주의 산업전략이 필요한 만큼 기업별로 어느 정도 '옥석 가리기'는 진행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태양광과 풍력 등 신재생에너지 사업에 대한 국내 기업들의 경쟁력에 대한 그의 믿음은 어느 누구보다 확고하다. "태양광 산업은 반도체와 풍력사업은 조선산업과 깊은 연관을 맺고 있는 만큼 국내 중소 및 대기업들의 글로벌 경쟁력은 그만큼 클 수밖에 없습니다. 따라서 앞으로 신재생에너지 산업에서 한국기업들이 세계 최고의 능력을 충분히 발휘할 것입니다." 이 이사장은 기후변화에 대한 국제적인 논의와 협상이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지만 별다른 결실을 맺지 못하고 있는 것에 대한 아쉬움도 털어놓았다. 지난해부터 한국에너지기후변화학회 회장직도 함께 맡고 있는 그는 기후변화협약당사국총회(COP) 등과 관련해 "지난해 코펜하겐총회에서도 구속력 있는 합의를 이끌어내지 못했고 올해 말 멕시코의 칸쿤에서 열리는 16차 회의도 희망적인 목소리가 들리지 않고 있다"고 설명했다. 화석연료 투입에 의한 개발도상국들의 경제개발과 기후변화에 대한 선진국의 역사적 책임 문제가 충돌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지금은 예전과 달리 강대국 중심이 아니라 다자간으로 변화한 만큼 선진국과 개도국의 입장이 상당히 다른 점이 걸림돌"이라고 설명했다. 현재 우리나라는 2012년에 18차 COP 유치를 추진하고 있다. ■ 글로벌화 전략 이 이사장은 에너지관리공단의 글로벌화 전략에 대해서도 깊은 의욕을 나타냈다. "개발도상국인 중남미 국가인 브라질과 멕시코, 그리고 아시아에서는 베트남 등에서 우리 쪽에 에너지 관리 및 인증 사업에 대한 벤치마킹이 쇄도하고 있습니다. 특히 러시아의 경우 에너지효율센터를 만들자는 제안이 들어올 정도로 글로벌 협력 및 지원체계도 강화하고 있는 중입니다." 특히 에너지관리공단으로서는 내년에 온실가스 감축과 신재생에너지 보급 확대라는 측면에 걸고 있는 기대가 크다. 우선 산업 부문에서는 올해 47개 사업장을 대상으로 시범사업 형태로 추진했던 '온실가스∙에너지 목표관리제'를 내년부터 410여개 전사업장을 대상으로 단계적으로 확대 시행한다. 또 타이어에 대한 에너지 소비효율 관리를 위해 '타이어 효율등급제'가 새로 도입되고 신재생에너지 클러스터 구축 등도 추진되기 때문이다. 더구나 내년부터 도입될 신재생에너지 의무공급(RPS) 제도 역시 빼놓을 수 없는 관심사항으로 꼽힌다. 의무공급비율은 총 발전전력 중 신재생의 비중을 내년부터 2.0%에서 시작해 오는 2022년에는 10%까지 높이는 것이다. 국내에서 500㎿ 이상의 설비규모를 가진 발전사업자와 수자원공사∙ 지역난방공사 등이 포함된다. 이 이사장은 "신재생에너지 의무공급 제도가 도입되면 해외 선진국에 비해 매우 낮은 신재생에너지 보급비율이 크게 확대되고 온실가스 감축에도 큰 기여를 할 것"이라며 "결국 신재생에너지 산업이 경쟁력 강화와 대규모 시장 창출 등 산업육성에도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약력 ▦1955년 경기도 가평 ▦1978년 서울대 정치학과 졸업 ▦1978년 22회 행정고시 합격 ▦1980년 동력자원부 사무관 ▦1989년 대통령비서실 정책보좌관실 행정관 ▦1993년 주호주대사관 상무관 ▦2001년 주 제네바대표부 WTO 담당 참사관 ▦2006년 산자부 기간제조산업본부장 ▦2006년 특허청 차장 ▦2008년 에너지관리공단 이사장 ▦2009년 한국에너지기후변화학회 회장
|
|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