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차원의 인재 쟁탈전은 유럽 등 주요국의 미래 경제에 막대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재정난과 경기악화로 손발이 묶인 선진국의 고급인재들이 고성장세를 이어가는 신흥국으로 떠나가는 현상이 가속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경기침체국은 경기회생을 이끌어야 할 잠재 성장동력인 인재 유출로 침체 장기화의 악순환에 빠져들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 반면 높은 성장력을 갖춘 신흥 국가들은 파격적인 인센티브로 글로벌 인재를 블랙홀처럼 빨아들이며 성장세에 가속도를 붙이고 있다.
선진국 경기가 부진한 틈을 타 고성장 신흥국이 주도권을 쥔 글로벌 인재 쟁탈전이 성장의 양극화로 이어질 가능성도 높아 보인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최근 경제위기에 처한 유럽 각국에서 수만명의 전문 인력이 침체 분위기에 젖은 유럽을 떠나 높은 성장세를 누리는 남미나 아프리카 등으로 퍼져나가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 중 상당수는 장차 유럽 경제가 침체를 딛고 일어서는 과정에서 중심적인 역할을 맡아야 할 젊은 고급 인재들이다. 미국 워싱턴의 이민 정책 인스티튜트의 데모트리오스 파파데메트리오 대표는 "이는 훗날 상황이 나아져 유럽 경제가 발돋움을 할 때 절실히 필요하게 될 고등교육을 받은 인재 유출을 의미한다"고 지적했다.
유로존에서 실업률이 가장 높은 스페인이 대표적이다. 지난 2008년까지만 해도 연간 50만명의 외국인력이 몰려들던 스페인에서는 지난해 초부터 9월 현재까지 5만6,000명에 이르는 인구 순유출이 일어났다.
경제위기와 긴축정책에 지친 젊은이들이 앞다퉈 해외로 뛰쳐나가고 있는데다 과거 스페인에서 일자리를 잡은 남미 출신 고급 인력들이 인재 확보에 막대한 돈을 쏟아붓는 본국으로 속속 되돌아가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그리스와 이탈리아 등 재정위기에 처한 다른 유럽 국가에서도 사정은 비슷하다.
문제는 심각한 경기악화가 이들 국가의 실업난을 가중시키는 한편 기업이 반드시 필요로 하는 핵심 인재들마저 떠나게 만들고 있다는 점이다. 그리스의 경우 지난해 12월 실업률이 19.2%로 스페인에 이어 유로존에서 두 번째로 높은 수준을 기록한 반면 기업의 구인난도 유로존 국가들 가운데 가장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맨파워그룹이 최근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그리스 기업인의 41%는 필요한 인재를 확보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고 응답했다. 이는 다른 유로존 국가는 물론이고 경제 최강국인 독일(40%)보다 높은 수치다.
장기 불황과 지진의 공포에 시달리는 일본의 경우 아시아 신흥국으로 우수 인재가 빠져나가면서 실업난의 와중에 고급 인력 가뭄에 시달리고 있다. 맨파워그룹의 설문에서 일본 경영자의 80%는 인재 확보의 어려움을 호소했으며 과학기술 등 연구계도 두뇌 쟁탈을 위한 외국의 공세를 받고 있다.
니혼게이자이신문에 따르면 일본 인간게놈 연구의 제1인자인 나카무라 유스케 내각관방의료혁신추진실장이 오는 4월 시카고대로 자리를 옮기는 것을 비롯해 지난해 3월 대지진 이후 해외 연구기관에서 일본 동북 지역의 학자들을 중심으로 끊임없이 러브콜을 보내고 있는 실정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지난해 일본 정부는 일정 자격을 갖춘 해외 인재에 대해 영주권 취득 기간을 단축해주는 등 고급 인력 확보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이 같은 선진국 우수인력 부족의 배경으로 부각되는 것은 가파른 경제 성장 속도만큼이나 무서운 속도로 글로벌 인재를 흡수하는 신흥국이다. 남미 최대의 경제국인 브라질의 경우 고성장을 뒷받침할 고급 인재와 노하우 부족을 메우기 위해 과거 해외로 유출됐던 자국의 화이트칼라 인재는 물론 해외 인재들을 무서운 속도로 빨아들이고 있다고 WSJ는 전했다.
특히 브라질 정부가 2014년까지 5,000억달러를 집중 투자하기로 한 인프라 부문의 경우2020년까지 110만명에 달하는 엔지니어 인력이 흡수될 것으로 예상된다.
중국 역시 블랙홀처럼 인력을 빨아들이고 있다. 중국은 2008년부터 해외 고급인재 유치 프로젝트인 '천인계획(千人計劃)'을 통해 지금까지 1,510명에 달하는 인재를 영입한 것으로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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