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약하나마 회복세를 이어가던 유럽 경제가 또다시 침체위기로 내몰리고 있다. 유로존(유로화 사용 18개국)을 지탱해온 독일·프랑스는 물론 유럽 경제 전반이 심상치 않다. 우크라이나 사태와 관련한 대러시아 제재에 따른 역풍도 본격화하고 있다.
14일 발표된 유럽 최대 경제국 독일의 2·4분기 국내총생산(GDP)은 전분기 대비 0.2%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시장 전망치인 -0.1%에도 못 미치는 수준으로 2년 만의 역성장이다. 같은 기간 프랑스의 경제성장률도 1·4분기에 이어 2분기 연속 0%에 그쳤다. 유로존 2위 경제국인 프랑스는 올 상반기 내내 제자리걸음만 한 셈이다.
유로존 경제의 양대 기둥인 독일과 프랑스의 동반 부진은 유로존에 대한 투자자들의 우려를 증폭시키고 있다. 특히 남유럽 재정위기에도 건재했던 독일이 흔들리면서 간신히 회복국면에 진입했던 유로존이 다시 침체의 수렁에 빠지는 것 아니냐는 목소리가 높다. 스탠리 피셔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 부의장도 지난 11일 미국 경제의 회복세를 위협할 최대 외부요인으로 유로존 경기부진을 꼽았다.
탄탄한 성장세를 보이는 영국을 제외하면 유럽 전반은 디플레이션(물가하락 및 경기침체) 공포에 휩싸여 있다. 북유럽 경제강국 스웨덴의 2·4분기 성장률은 전분기 대비 0.2%에 그쳤다. 1·4분기는 -0.1%였다. 이탈리아·핀란드는 이미 경기침체에 들어선 상태다.
앞서 13일 유럽연합(EU) 통계청(유로스타트)이 발표한 6월 유로존 산업생산은 전월 대비 0.3%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시장 전망치인 0.3% 증가를 뒤엎은 것이자 5월의 1.1% 감소에 이어 2개월 연속 하락한 것이다. 캐피털이코노믹스의 제시카 하인즈 유럽 분석가는 "올해 남은 기간에도 부진이 이어질 것이라는 비관론이 우세하다"며 "유로존 회복세가 정점을 찍었다는 증거"라고 지적했다. 클라우스 비스테센 판테온매크로이코노믹스 유로존 수석 분석가도 "유로존의 성장세는 위험할 정도로 낮고 가벼운 심리적 타격에도 취약한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여기에 지정학적 리스크는 유럽 경제의 장래를 더욱 암울하게 한다. 이미 유럽은 우크라이나 사태를 둘러싸고 주요 교역상대인 러시아와 주고받은 경제제재의 후유증을 체감하기 시작했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러시아가 유럽 농산물에 대해 1년간 수입금지 조치를 내리면서 유럽 농업 부문이 입을 피해규모가 53억유로에 이른다고 보도했다. 독일에서는 기업들의 러시아 매출도 줄줄이 타격을 받으면서 증시자금 이탈이 가속화하고 있다.
디플레이션 위협에 지정학적 리스크가 겹치면서 마리오 드라기 유럽중앙은행(ECB) 총재가 추가 부양책을 내놓아야 한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미국식 양적완화 카드를 사용할 때가 됐다는 얘기다. CNBC는 "현 상황을 고려하면 올 한해 유로존이 1% 성장할 것이라는 ECB의 전망마저 지나치게 낙관적으로 보인다"면서 "ECB가 전망치를 조금이라도 내릴 경우 당장 양적완화를 해야 한다는 압박은 더욱 거세질 것"이라고 지적했다. ECB는 다음달 4일 통화정책회의를 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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