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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경이 만난 사람] 이일형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원장

TPP 가입은 선택 아닌 필수… FTA보다 경제효과 훨씬 커

참여 않으면 '표준화·누적 원산지규정'서 절대 열세

내년부터 글로벌 금융시장 변동성 커질 가능성 높아

한국경제 체질개선 위해 '3개년 계획' 충실히 집행을



박근혜 정부의 2기 내각 인선이 발표된 지난 13일 이일형(57·사진)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 원장을 서울 대외경제연 본관 집무실에서 만났다. 온 나라의 시선이 개각에 쏠려 있던 이날 원장실 TV 채널은 CNN에 맞춰져 있었다. 원장실 벽에 붙은 화이트보드에는 복잡한 경제 수식이 자리를 잔뜩 차지하고 있었다. 이 원장은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가입은 선택이 아닌 필수"라며 "자유무역협정(FTA)보다 경제적 효과가 훨씬 크다"고 밝혔다. 이 원장은 또 기업과 국내 경제의 체질개선을 위해 박근혜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경제혁신3개년계획'의 실천과 성공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날 내정된 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후보자의 제1 목표도 경제혁신3개년계획의 충실한 실행이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먼저 통상 분야에서 가장 큰 관심을 끌고 있는 TPP에 대한 견해를 물었다. 대외경제연은 TPP와 관련한 경제효과 분석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조심스러운 답변이 돌아올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이 원장의 생각은 확고했다. 그는 한국의 TPP 가입에 대해 "경제적 측면만 보면 논의할 필요 없이 당연히 (가입해야) 하는 것"이라고 단언했다. TPP처럼 여러 나라가 동시에 무역 빗장을 여는 '메가 FTA'가 양자 FTA보다 경제적 효용성이 훨씬 크다는 것이다.

그는 "앞으로 세계 경제는 '글로벌 가치사슬(global value chains)'을 어떻게 구축하느냐의 경쟁"이라며 "이런 측면에서 TPP 같은 메가 FTA가 양자 FTA보다 더 우월하다"고 설명했다. 한 기업에서 부가가치를 생산하는 과정을 설명하는 개념인 '가치사슬'은 최근에는 세계 무역에서 한 국가의 부가가치 창출 기여도를 나타내는 용어로 사용되고 있다.

예를 들어 중국에서 최종적으로 생산되는 아이패드의 수익배분 구조(2010년 기준)를 보면 설계·조달 등 고부가가치 영역을 담당한 애플사(社)는 전체 수익의 30%를 가져갔고 부품을 공급한 한국·일본·대만은 총 17.6%를 차지했다. 반면 최종 단계인 조립을 담당한 중국의 수익은 전체의 1.6%에 불과하다. 무역 통계만 보면 아이패드를 최종 수출하는 중국에 경쟁력이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착시 현상이 나타나는 셈이다.

이 원장은 "한국이 TPP 같은 메가 FTA에 참여하지 않을 경우 '표준화'와 '누적 원산지 규정'에서 절대 열세에 놓이게 된다"며 "한국이 미국이나 캐나다와 FTA를 맺었는데 굳이 TPP에 가입할 필요가 있느냐고 지적하는 것은 현실을 알지 못하는 분석"이라고 강조했다.

특히 표준화 측면에서 앞으로는 부품생산 하청부터 조립에 이르기까지 전 생산단계별로 전 세계가 경쟁을 벌이게 된다는 게 이 원장의 지적이다. 지금은 현대차가 최종적으로 생산한 쏘나타가 도요타의 캠리와 경쟁을 하고 있지만 앞으로는 설계·부품생산·조립 등 모든 측면에서 표준화가 진행되고 이에 따라 치열한 경쟁이 발생하게 된다는 얘기다.

그는 "자동차를 생산하는 데 4단계의 공정이 필요하다고 가정하면 메가 FTA 시대 전에는 1·2·3단계의 표준화가 진행되지 않아 완성품만 두고 싸웠지만 이제는 이런 방식이 더 이상 통하지 않게 된다"고 설명했다.

TPP에 가입하지 않으면 표준화 그룹에서 밀려나 일종의 '외딴섬'이 될 수 있다는 얘기다. 그는 이어 "표준화 전에는 국내에서 생산의 특정 단계를 쥐어짜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었지만 앞으로는 이런 방식을 적용할 수 없게 돼 TPP 가입이 모든 생산 분야에서 혁신이 일어나는 계기로 작용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 원장은 다만 TPP의 경제적 효과와 실제 가입은 별개의 문제라고 선을 그었다. TPP의 효용은 분명하지만 농민 등 실제적 이해관계에 있는 사람들에게는 또 다른 기준이 적용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대외경제연은 TPP의 경제적 효과에 대한 보고서를 작성해 이를 주무 부처인 산업통상자원부에 전달했으며 산업부는 이를 토대로 이르면 오는 7~8월 중 TPP 가입 여부를 선언할 방침이다. TPP의 주요 참가국인 미국과 일본의 협상이 진척을 보이면 우리도 참가를 선언할 가능성이 높다는 게 전문가들의 예상이다.

TPP에 가입하지 않은 중국에 대해서는 한중 FTA 협상을 이른 시일 내에 타결할 필요성이 있다는 게 이 원장의 지적이다. 그는 "2000년대에 이뤄진 세계화를 통한 빠른 세계 무역 성장을 더 이상 기대하기 어렵다"며 "앞으로 신시장 개척보다 기존 시장을 어떻게 확장할지가 더 중요하고 이런 측면에서 한중 FTA의 역할이 커질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글로벌 금융시장의 전망에 대해 이 원장은 우려 섞인 시각을 드러냈다. 특히 미국과 관련해 세 가지 불안요인을 꼽았다. 첫 번째 불안요소는 커지는 글로벌 금융시장의 리스크에 무감각해지는 투자자들의 심리다. 실제 리스크에 비해 금융시장이 비정상적일 정도로 안정세를 나타내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최근 글로벌 금융시장을 보면 주식시장의 안정세가 이어지고 있고 고위험 채권에 투자하는 경향도 나타나고 있다"며 "내년부터 주택시장과 주식시장에 들어간 유동성 자금이 빠져나오기 시작하면 포트폴리오 조정이 일어나 금융시장이 출렁일 수 있다"고 경고했다.

실제로 월가의 공포지수로 통하는 '시카고상업거래소 변동성지수(VIX)'는 2007년 이후 최저 수준까지 떨어지고 뉴욕증시는 연일 최고치를 갈아치우고 있다. 이 때문에 파이낸셜타임스(FT) 등 주요 외신에서는 현재의 안정기가 '폭풍 전 고요'가 아니냐는 분석까지 내놓고 있다.

두 번째는 미국 경기의 둔화 가능성이다. 특히 소비가 늘어나고 있으나 투자는 이에 발맞춰 증가하고 있지 못하다는 점을 불안요인으로 꼽았다. 그는 "미국 경제는 소비로 지탱되는 구조인데 만약 현재 미국의 소비 증가세가 중앙은행의 돈풀기인 양적완화(QE)와 직접적 연관이 있는 것으로 밝혀진다면 QE가 종료되는 내년부터 경기부진이 나타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 같은 상황에서 금리마저 오를 경우 소비심리는 더욱 쪼그라들 수밖에 없다.

세 번째 불안요인은 미국의 재정긴축 정책이다. 현재 미국은 막대한 빚더미에 비해 제대로 된 재정 정상화 작업을 펼치지 못하고 있다고 이 원장은 분석했다. 올해 경기회복 등을 근거로 미국 정부가 자신감을 얻어 급격한 재정긴축에 나서면 미국은 물론 전 세계에 또 다른 문제가 될 가능성이 있다. 그는 "경제 기초체력이 강하고 보유외환이 많은 한국은 금융시장 불안에 상대적으로 덜 흔들릴 수 있지만 미국 내부 리스크가 한꺼번에 폭발하면 덩달아 타격을 입게 된다"고 경고했다.

최근 원·달러 환율 하락(원화가치 상승)과 이에 따른 수출기업들의 채산성 문제에 대해 이 원장은 "수출기업들이 기술혁신으로 경쟁력을 확보해 환율변동에 내성을 키우는 게 구조적인 해법이 될 것"이라고 진단했다. 과거처럼 환율이 내리면 기업에 불리하고 오르면 기업에 유리하다고 딱 잘라 말하기 어려운 시대가 됐다는 것이다.

그는 "원화강세가 지속되면 수출기업은 당연히 영향을 받지만 그것이 정확히 어떤 시기에 어떤 상품에 피해로 나타날지는 예단하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글로벌 가치사슬로 전 세계 기업이 복잡하게 얽혀 있어 환율등락의 영향을 생산단계별로 나눠 분석해봐야 한다는 의미다.

최근 환율하락에도 불구하고 수출이 강세를 띠는 배경에도 이런 원인이 있다고 그는 분석했다. 그는 "단기적으로 1%의 마진 때문에 울고 웃는 기업 입장에서 환율이 중요한 변수이고 이에 대한 대책도 필요하다"고 전제한 뒤 "다만 장기적으로 보면 기술혁신에 성공하는 기업이 3~4년 동안 절대적인 경쟁력을 갖게 되는 만큼 기술개발에 대한 투자가 필수 불가결한 요인"이라고 밝혔다.



이와 더불어 이 원장은 지금이 기업과 국내 경제의 체질혁신을 위해 정부의 역할이 어느 때보다 중요한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해외에서 경제 전문가들을 만나면 한국의 경제혁신3개년계획에 비상한 관심을 보이고는 한다"며 "내수를 키우고 경제체질을 개선하는 핵심 내용들이 이 안에 모두 들어 있다"고 설명했다. 앞으로 3년 안에 가시적인 결과물을 내놓기는 어렵겠지만 적어도 그 안에 혁신을 이루는 '준비단계(set in motion)'에만 확실히 돌입할 수 있어도 충분한 성과가 된다는 의미다.

He is …

△1958년 서울 용산 △1976년 킹스컬리지스쿨런던 △1982년 런던정경대 경제학학사 △1985년 영국 에식스대 경제학석사 △1986년 영국 워릭대 경제학박사 △1989년 IMF 이코노미스트 △1996년 IMF 선임 이코노미스트 △2001년 IMF 부과장 △2005년 IMF 베트남 주재 수석대표 △2007년 IMF 자문관 △2010년 IMF 중국 주재 수석대표 △2013년 대한민국 G20 국제협력대사 △2013년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원장



G20 협력대사 시절 한·중 갈등 조정… 대표적 IMF·중국통

■ 이 원장은

서일범기자

이일형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 원장은 정부 내에서 대표적인 '국제통화기금(IMF)통'이자 '중국통'으로 통한다. 영국에서 석·박사학위를 모두 취득하고 곧바로 IMF에 자리를 잡아 지난 2010~2013년에는 IMF 중국 주재 수석대표까지 지냈다.

이어 지난해 5월 우리나라의 주요20개국(G20) 국제협력대사(셰르파)로 임명되면서 IMF 생활을 정리했고 이어 9대 대외경제정책연구원장에 선임됐다. 중국에 쌓아놓은 인적 네트워크가 워낙 탄탄해 각 나라의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부딪히는 G20 협상장에서 한국과 중국의 갈등을 조정하는 가교 역할을 충실히 이행했다는 후문이다. 이런 경험을 바탕으로 지난달에는 중국에서 취업과 창업을 준비하는 이들을 위해 '중국 변화에 따른 중국 전문가의 조건'이라는 제목으로 토크 콘서트를 열기도 했다.

국제무대에서 국내로 자리를 옮긴 이 원장은 대외경제연의 내부 혁신을 준비하고 있다. 1989년 출범한 대외경제연은 한국개발연구원(KDI) 등 다른 국책연구원에 비해 출범이 늦어 상대적으로 인지도가 떨어지는데다 오는 10월 세종시 이전을 앞두고 박사급 인재가 유출되는 등 몸살을 앓고 있다. 대외경제연의 연구원은 박사급 60여명을 포함해 총 140여명에 불과해 비슷한 연구를 진행하는 IMF(2,000명)나 세계은행(WB·1만명)과 비교해 턱없이 부족하다는 게 이 원장의 생각이다.

하지만 당장 인력을 확대하기는 어려운 만큼 특정 연구주제에 대해 외부 연구자와 공동 연구를 진행하는 등의 새로운 방법을 모색하고 있다. 미국과 유럽 등지에서 박사학위를 마친 인력을 대상으로 채용 인터뷰도 꾸준히 진행하고 있다.

물론 이 같은 열악한 상황 속에서도 대외경제연은 나름의 성과를 내고 있다. 올해 초 미 펜실베이니아대의 '싱크탱크와 시민사회 프로그램'이 발표한 글로벌 싱크탱크 랭킹에서 대외경제연은 세계 6,826개 연구기관 중 당당히 54위에 이름을 올렸다.

이 원장은 "현재 대한민국 경제의 과제는 수출에 의존하는 모델에서 내수와 대외경쟁력을 동시에 향상할 수 있는 새로운 모델을 찾아 DNA를 바꾸는 것"이라며 "창조경제 구현 등 정부 과제를 수행하기 위해 대외경제연이 해야 할 일을 충실히 이행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사진=권욱기자

대담=김정곤 경제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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