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방정부의 부채상한 증액을 놓고 지루하게 대립했던 미 정치권이 막판 극적인 타협을 이뤄냄에 따라 미국은 채무상환 불이행(디폴트) 위협에서 벗어나게 됐다. 그러나 이번 합의만으로 정부지출의 40%를 차입에 의존하고 있는 미국이 재정적자 문제에 대한 근본적 해법을 확보했다고 보기는 어렵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정치권에서도 구체적인 정부지출 감축안을 둘러싸고 논란이 재연될 가능성이 높은데다 오는 9월 확정해야 하는 2012년 예산안도 변수로 남아 있다. 특히 이번 합의는 미 정부가 경기부양을 위한 재정정책을 펼칠 수 없게 해 통화정책에 대한 의존도를 높이는 결과를 초래하게 됐다. 월가에서 벌써부터 3차 양적완화(QE3) 시행에 대한 기대감이 솔솔 나오는 것도 이 같은 이유에서다. ◇국방비 VS 사회보장 지출=미 정치권이 도출한 합의안에 따르면 우선 향후 10년간 9,170억달러의 정부지출 삭감을 확정하고 즉시 9,000억달러의 부채상한 한도를 증액한다. 지출 삭감에는 3,500억달러의 국방예산이 포함되며 공원관리 예산, 노동부 및 주택 관련 예산도 삭감된다. 이어 민주ㆍ공화 양당 하원의원 각 6명씩 12명으로 구성된 특별위원회는 11월23일까지 국방비와 비국방비에서 절반씩 총 1조5,000억달러의 추가적인 지출삭감 방안을 마련하기로 했다. 민주ㆍ공화당의 이견이 큰 메디케어 등 사회보장지출 삭감 문제도 이때 논의돼 논란이 예상된다. 만약 이 위원회가 최소 1조2,000억달러의 삭감방안을 마련하지 못하거나 위원회가 마련한 안이 의회를 통과하지 못할 경우 2차 부채상한 한도 증액은 1조5,000억달러가 아닌 1조2,000억달러로 낮아진다. 이와 관련해 미 언론은 1조5,000억달러에 달하는 적자감축이 정부 규모의 축소나 세금인상과 사회보장성 지출의 상당한 삭감 없이 가능할지 의문을 나타내고 있다. ◇경기회복 불확실성 증폭=미국 경제는 올 상반기 중 성장률이 0.8%에 그칠 정도로 회복속도가 크게 둔화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상당한 규모의 정부지출이 축소되면 경제 활력이 더욱 떨어지게 될 것이라는 우려가 제기된다. 얼 에리언 핌코 최고경영자는 31일(현지시간) ABC방송과 인터뷰에서"현재 미국 경제는 매우 취약하며 이 상태에서 지출을 줄이면 체력이 더욱 약해질 것"이라며 "실업률이 더 오르고 성장률은 떨어질 것"이라고 진단했다. 이번 결정의 시점이 적절하지 않다는 지적도 나온다. 카르멘 레인하트 피터슨국제경제연구소의 선임연구위원은 "적자를 줄일 수 있는 기회를 흘려 보내고 경제가 취약한 지금 그것을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상당수 이코노미스트는 미국 경제가 어느정도 궤도에 오르도록 1년 정도 더 기다린 후 적자감축에 나서도 늦지 않다는 의견을 내놓고 있다. 이번 합의에 따라 앞으로 미국의 경기부양은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의 통화정책에 더욱 의존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FRB의 행보도 주목된다. 월가에서는 미 경제의 성장세가 지속적으로 부진할 경우 FRB가 일정 기간 현재의 제로금리를 유지하겠다고 명확하게 밝히는 방안과 QE3 등을 통한 국채 보유를 늘리는 방안 등이 적극적으로 검토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보고 있다. FRB는 9일 통화정책을 결정하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를 열 예정이어서 어떤 결정을 내놓을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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