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리의 장점은 승부를 서두르지 않는다는 점이다. 구리뿐만 아니라 일반적으로 절정 고수들은 누구나 승부를 서두르지 않는다. 이창호가 그렇고 전성기의 우칭위엔이나 린하이펑이 그러했다. 흑1로 무심히 한칸 뛰어놓고 기다리는 구리. "백더러 중앙을 어서 따내라는 주문입니다."(박정환) 백이 중앙을 따내면 흑은 상변을 크게 점령할 작정이다. 이세돌은 중앙을 따내지 않고 백2로 좌상귀를 지켰다. "이젠 흑이 중앙을 움직일 겁니다. 움직이지 않을 이유가 없어요."(박정환) 참고도1의 흑1로 움직여야 한다는 얘기였다. 백은 2에서 6으로 시비를 걸겠지만 흑7로 하나 꼬부려 놓으면 백이 계속 고전이라는 것이 박정환의 주장이었다. 그러나 구리는 이번에도 중앙에 손을 대지 않았다. 흑3으로 상변을 지켰다. 이세돌은 백4로 풍덩 뛰어들었고…. "원래 자기의 미생마 근처에서는 싸움을 벌이지 말라는 것이 기훈인데 이런 식으로 뛰어들다니. 이세돌의 패기도 알아줘야 합니다."(온소진) 흑5로 누르자 이세돌은 백6으로 또 뛰어들었다. "정말 좌충우돌이군요. 하수다루기 수법이에요. 구리가 기분이 상했을 것 같아요."(온소진) 이세돌은 백12로 또 뛰어들고 본다. 검토실의 고수들은 쓴웃음을 짓고 있다. 이세돌의 행마가 너무 광분하고 있는 것 같다. 백14는 최강수. 참고도2의 백1로 움직이는 것은 흑2,4로 상변이 모두 흑진이 되므로 백이 이길 수 없다. 결국 흑은 21로 따내고 백은 26으로 탈출하는 바둑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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