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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을 뜨는 순간부터 잠자리에 드는 순간까지 현대인은 스마트 기기를 이용해 인터넷을 검색하고,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들어가 소식을 주고받으며, 소셜 커머스에서 필요한 물건을 산다. 즉 정보가 삶의 A부터 Z까지 좌우하는 거대한 힘인 셈이다. 하지만 정보가 현대 사회만의 전유물일까. 바로 이 지점에서 문화사 전문가인 저자의 궁금증은 시작된다.
로버트 단턴은 프랑스 대혁명이 일어나기 직전이던 18세기 중반 파리에서 일어난 사건에 주목한다. 1749년 봄, 루이 15세를 비방하는 시가 거리에 나돌자 시인을 체포하라는 왕명을 받든 경찰이 행동에 나선다. 은밀하고 대대적인 작전이 펼쳐진 결과 대학생과 하급성직자 등 14인이 바스티유로 잡혀간다. 이른바 '14인 사건'이다.
저자는 '14인 사건' 그 자체가 아니라 그것을 둘러싼 당대의 세평과 분위기에 주목하고, 문맹률이 절반인 구어 중심의 세계에서 의사 소통이 이뤄진 방식과 그 매체에 대해 파고 들어간다.
"수세기동안 대부분의 사람들은 (특히 여성들은) 읽는 법을 몰랐다. 그들은 끊임없이 구두로 정보를 교환했지만 그 모든 것이 거의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렸다. 그것을 복원할 수 있어야 비로소 우리는 의사소통에 대한 제대로 된 역사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은 바로 그 비어 있는 부분을 채우려는 시도의 하나이다."
지금은 마음에 들거나 함께 공유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면 '리트윗'을 하거나 '좋아요' 버튼을 누르지만 옛날에는 쪽지에 필사해 전하거나 외워서 들려줬다고 한다. 왕이나 궁정에 대한 가십과 정치적 비판 또한 시나 노래의 형태로 거리 곳곳으로 퍼져 나갔다. 그중 일부에서는 궁정인의 섬세한 필치가 묻어났고, 일부는 평민들의 흔적을 담고 있기도 했지만 이 모든 것이 귀와 입으로 이뤄진 네트워크의 형태로 소통된 것이다.
저자는 프랑스 국립도서관과 파리 시립역사도서관 등에 소장된 방대한 사료를 조사해 흔적도 남지 않고 사라져버린 청각과 구어의 세계를 파고 들어간다. 저자에 따르면 당시에는 노래가 신문의 역할을 했다. 거리에 나돌던 소문과 세평들이 노랫말의 형식을 빌려 전파됐다. 시와 노래라는 매체를 활용해 사건에 관한 정보와 그에 대한 논평을 신속하게 전하고 소비했으며, 그것이 일종의 여론으로 기능하면서 정책 결정에 영향을 끼쳤다는 게 저자의 설명이다.
저자는 당대 의사소통 방식은 지금과는 현격히 다르지만 기능과 메커니즘에 있어서는 우리 시대의 정보사회를 연상시키는 의사소통망이 존재했다는 점을 강조한다. 왕부터 궁정의 여러대신들, 고등법원, 대학가의 젊은 지식인들, 시장통의 상인들, 거리의 가객들, 행상인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이 어떻게 하나의 의사소통망 안에서 상호작용하는지 마치 영화 속 장면처럼 실감나게 보여준다. 그 과정에서 문화가 위에서 아래로 흐를 뿐만 아니라 아래에서 위로도 흐를 수 있다는 사실을 입증했다는 점 역시 이 책의 미덕이다.
저자는 역사의 모든 사건에서 사람이 핵심적인 역할을 하고 있으며, 사람간 소통과 그 소통을 이어주는 매체를 들여다봐야 역사의 실체를 이해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 이는 엄청난 정보의 홍수 속에 살아가고 있는 현대 사회에도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1만 5,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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