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제2기 경제팀이 출범해 새로운 정책을 제시했다. 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달 20일 인천의 한 중소기업을 찾은 자리에서 "중소기업은 우리 경제의 버팀목이자 희망이고 경제를 업그레이드할 수 있는 마스터키는 중소중견기업에 있다"며 중소기업 육성에 대한 강한 의지를 피력했다. 제2기 경제팀에 대해 중소중견기업계가 기대에 부풀고 있다는 소식도 들린다.
기업 수 88% 차지 불구 생존권 위협
경제수장들이 취임 초기 중소중견기업 육성을 외치는 모습은 낯설지 않다. 그런데 결과 역시 익숙하다. 중소중견기업 육성은 성장지상주의의 벽에 부딪히기 일쑤였고 장기적 전망이 아니라 단기적 성과에 의존하면서 많은 소상공인(소기업 중에서도 작은 기업, 생업적 업종을 영위하는 자영업자)들의 낙담만 가져왔다.
지난 2012년 대선은 성장지상주의 패러다임의 전환을 기대할 만한 계기였다. 박근혜 대통령은 경제민주화와 복지국가 건설을 슬로건으로 내걸었고 그것은 시대정신에 부합했기 때문에 집권할 수 있었다. 하지만 불과 1년 반이 지난 지금 정부의 집권 철학은 쉽게 찾아보기 힘들다.
최 경제부총리는 기업 세금을 줄이고 기업 활동을 저해하는 규제를 풀며 재정을 확대하는 것으로 제2기 경제팀의 색깔을 분명히 하고 있다. 규제를 최소화하고 세금을 줄여 경쟁과 창의를 촉발시켰던 지난 정권의 정책은 기대했던 '낙수효과'는 나타나지 않고 극소수 대기업만 돈을 벌게 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소상공인들이 더욱 절망적인 상황에 몰렸음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2012년 소상공인 통계집에 따르면 우리나라 소상공인 사업체는 292만개로 전체 기업 중 88%에 달하는 절대 다수며 종사자 기준 경제활동인구의 40%를 차지해 분류된 기업 군 중 가장 크다. 또한 인구 대비 소상공인 비율은 28.8%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인 15.9%의 두 배에 가깝다. 구조적으로 볼 때 우리나라의 소상공인들은 사회안전망을 지원받아야 하는 이들과 같은 위치에 있다.
문제는 소상공인들에게 사회안전망은 제 기능을 하지 못한다는 데 있다. 매년 자영업자의 18%가 폐업하고 있고 소상공인의 월평균 매출액은 2010년 990만원에서 2013년 877만원으로 줄었다. 영업이익이 '100만원 미만'인 소상공인도 27%에 이른다. 설상가상으로 정부에서는 퇴직자들을 식당과 같은 단순 업종 창업으로 몰아 경쟁을 악화시키고 있으며 대형 유통업체들의 골목 상권 진출이 소상공인의 생존권을 위협한 지 오래다. 소상공인들은 이미 생계의 마지노선 위에 서 있다.
사회안전망이 제 구실을 하지 못하는 사회에서는 항상 붕괴의 불안을 안고 살아야 한다는 점에서 소상공인 존립은 국가의 생존전략과 맥을 같이 한다. 박 대통령의 경제 멘토였던 김종인 석좌교수가 최근 "야수와 같은 자본주의 시장이 정상적이고 공정하게 기능을 발휘할 수 있게 정부가 틀을 짜주지 못하면 지속적이고 장기적인 성장은 불가능하다"고 강조한 대목은 경제적 약자에 대한 정부의 역할을 명확하게 보여준다. 그런 이유로 최 경제부총리가 지향하는 '경제 업그레이드를 위한 마스터키인 중소중견기업 만들기'를 위해서는 중소상공인들이 있는 텃밭 자체부터 가꿔야 한다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귀곡천계 안되게 정부 적극 지원을
귀곡천계(貴鵠賤鷄)란 말이 있다. 따오기를 귀하게 여기고 닭을 천히 여긴다는 뜻으로 가까운 것을 천하게 여기고 먼 것을 귀하게 여기는 것이 사람의 인지상정임을 풍자한 말이다. 우리가 일상생활 속에서 늘 접할 수 있는 중소상공인들은 닭과 같은 존재지만 사회 기반을 지지하는 귀한 것임을 깨달아야 한다. 경제민주화에 대한 일관된 정책, 공정한 시장질서 수립을 통해 시대정신의 회복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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