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21로 근거를 마련하자 이쪽도 호락호락 잡힐 말이 아니다. 그렇다면 도처에 챙겨놓은 흑의 실리가 말을 하는 바둑이 된 것이다. 박영훈이 결정적인 순간에 내린 결단은 현명했다. 꼬리를 떼어주는 그 도마뱀작전이 성공을 거둔 것이다. 떼어준 돌은 5개. 실리로는 15집에 불과하다. 검토실에는 박영훈의 승리를 점치는 기사들이 많아졌다. 흑의 실리는 60집에 육박하는데 백의 확정지는 50집에도 미치지 못한다. 백의 희망이라면 아직 좌변의 흑이 미생이라는 점이다. 그곳을 적절히 공략하여 이득을 얻어내야 계가바둑이 될 것이다. 이세돌은 좌변의 흑을 노려보더니 백22로 손을 돌렸다. 백24로 젖힌 것은 승부의 요령. 지금이라면 흑이 25의 자리에 막게 마련이다. 나중에, 그러니까 백26이 놓인 시점에서 24에 젖히면 흑이 혹시 37의 자리에 물러설지도 모른다. 결국 흑37의 굴복을 얻어내는 데 성공했다. 우변의 흑43까지로 일단락이다. 백이 참고도1의 백1로 잡으러 와도 흑2면 이 흑대마는 완벽하게 살아 있다. 이젠 좌변의 흑대마를 정조준하는 도리밖에 없는데…. 백46은 안형의 급소. 흑47은 어디 한번 잡아보라고 버틴 수순이다. 이세돌의 장고가 시작되었다. 속눈썹이 유난히 긴 이세돌. 쉴새 없이 눈을 깜박이며 고심한다. 상식적인 공격이라면 이 코스라면서 해설자 윤성현9단이 참고도2를 사이버오로 생중계 사이트에 올려놓고서 덧붙여 말했다. "잡힐 것 같지는 않군요." 이세돌도 그렇게 생각했는지 백48이라는 기묘한 공격수를 들고나왔다.(30,36…24. 3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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