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가 급성장을 할 수 있었던 것은 빠른 추격자(fast follower) 전략이 있어서다. 덕분에 반도체와 디스플레이ㆍ스마트폰 등의 분야에서는 더 이상 오를 곳이 없는 자리에 섰다. 하지만 이로 인해 쫓아갈 대상도 사라졌다. 기존 전략의 유용성이 사라진 셈이다. 지난해부터 '위기'라는 경고음이 울렸던 것도 이 때문이다.
때마침 이건희 회장이 신경영 20주년을 맞아 전임직원에게 e메일을 보내 "실패가 두렵지 않은 도전과 혁신, 자율과 창의가 살아 숨쉬는 창조경영을 완성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창조적 혁신을 위해 역량을 모아야 한다고도 했다. 추격자에서 벗어나 진정한 혁신기업으로 거듭나려는 의지가 엿보이는 대목이다. 애플과 구글을 능가하는 혁신으로 삼성전자가 1등의 위기에서 벗어나기 바란다.
피치의 지적은 우리 기업 전체에 대한 경고이기도 하다. 한국 기업들은 현재 '넛크래커'의 위기에 봉착해 있다. 아베노믹스로 무장한 일본은 기술과 가격경쟁력을 모두 갖추고 공세를 강화하고 있고 한수 아래로 여겼던 중국도 세계 1위 품목을 우리보다 23배나 많이 갖고 있다. 단순히 제품의 질이나 가격을 높이는 방식으로는 경쟁력을 갖기 힘들게 됐다. 박근혜 대통령이 새 국정과제로 창조경제를 제시했을 때 많은 이들이 고개를 끄덕인 이유다.
한국 기업은 지금까지 상품과 서비스의 '진화'를 성장의 핵심 동력으로 삼아왔다. 진화는 기존에 있던 것을 좀 더 잘, 그리고 편리하게 만드는 것이다. 최근 우리가 처한 상황은 이것만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사실을 분명하고 심각하게 일깨워준다. 이제 예전에는 찾아볼 수 없었던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는 데서 성장 모멘텀을 찾아야 할 때다. 창조적이고 파괴적인 혁신은 선택이 아닌 필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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